1929년. 뉴욕에 있는 나이트클럽 ‘포즈와 제리즈(Pod`s & Jerr's)’에서 댄서를 모집했다. 한 흑인 소녀가 오디션을 보았다. 미국은 대공황에 허덕였고, 할렘의 흑인 소녀에게도 삶은 혹독하고 잔인했다. 그녀는 불행하게 태어나 불행을 겪으며 성장했고, 언제나 죽음의 문턱에서 고통을 받았다. 어머니는 거리의 창녀였고 소녀도 창녀의 삶을 살았다. 슬럼가에서 태어나 아버지에게 버림받았고, 능력 없는 어머니는 소녀를 사촌 집에 맡겼다. 소녀는 15세가 될 때까지 2번 성폭행을 당했고 2번 투옥되었다. 포즈와 제리즈를 찾아갔을 때, 소녀는 춤을 추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당연히 오디션에 낙방했다. 낙심한 채 돌아서는 소녀가 가엾었는지 클럽의 피아노 연주자가 노래를 불러 보라고 했다. 그는 「Trav`lin All Alone」이란 곡을 연주했다. 소녀가 아는 곡이었다. 소녀의 노래가 시끌벅적한 홀 안에 울려 퍼졌다. 그것은 사람의 폐부를 찌르는, 온 마음과 몸을 울리는 처절한 비명과도 같은 음색의 노래였다.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홀 안의 사람들은 소녀의 노랫소리에 일제히 하던 일을 멈추고 조용히 노래를 듣기 시작했다. (인물세계사, 김정미
애비 로드(Abbey Road)는 영국 런던 북부 캠던구와 시티 오브 웨스트민스터에 걸친 도로로, 킬번 북서쪽의 퀙스 로드와 웨스트 엔드 레인이 만나는 교차로에서 시작된다. 남동쪽 방면으로 약 1.6㎞ 정도 이어지는 길인데, 벨 사이즈 로드와 바운더리 로드, 말보로 플레이스를 거쳐 그로브 엔드 로드와 가든 로드가 만나는 교차로에서 끝난다. 여기서 서쪽으로 애버콘 플레이스와 이어진다. 비로드 남동쪽 끝 3번지에 저 유명한 EMI 소속 애비 로드 스튜디오가 있다. 비틀즈라는 이름과 더불어 영원히 기억될 장소다. 1969년, 비틀즈는 그들의 마지막 앨범 『Abbey Road』를 내놓는다. 그리고 스튜디오 바로 앞 애비 로드의 횡단보도를 멤버 네 명이 가로지르는 사진을 촬영해 앨범 커버로 사용했다. 맨 왼쪽, 그러니까 가장 나중에 횡단보도를 걷는 인물이 조지 해리슨이다. 그 앞에 폴 매카트니가 맨발로 걷고 있고 검은 양복을 입은 링고 스타와 온통 흰 양복과 구두로 치장한 존 레논이 앞서 간다. 2024년 현재 앞장선 레논과 뒤처진 해리슨은 세상에 없다. 『Abbey Road』 발매와 동시에 횡단보도는 런던의 명소가 되었다. 오늘날 런던의 랜드 마크 가운데 하나이며
두비 브라더스는 1970년 캘리포니아 주 산호세에서 결성되어 동시대 캘리포니아의 팝·록 밴드들 가운데 가장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그룹이다. 멤버 교체가 잦았지만 (기타리스트 패트릭 시먼즈만이 두비 브라더스가 발매한 모든 음반에 참여했다) 밴드의 근간은 크게 흔들리지 않았고 히트 음반을 여럿 내놓았다. 한국에도 팬이 많아서, 특히 1970년대에 청춘을 보낸 세대라면 「Listen to the Music」, 「Black Water」, 「China Grove」와 같은 곡들을 라디오에서 자주 들었을 것이다. 두비 브라더스의 전성기는 1970년대다. 지금은 옛날의 히트곡들을 연주하는 라이브 콘서트를 자주 여는데 가는 곳마다 열기가 뜨겁다. 무료로 동영상을 볼 수 있는 사이트에 가면 두비 브라더스가 위에 소개한 곡들을 연주한 콘텐트를 즐길 수 있다. 한국에서 ‘두비 브라더스’ 하면 뭐니 뭐니 해도 「Listen to the Music」인데, 2018년 11월 18일 뉴욕의 비콘 시어터에서 연주한 실황 녹화가 가장 음질이나 화질이 뛰어나다. 물론 젊은 시절의 연주도 들을 수 있다. 두비 브라더스의 현재 라인업은 창립 멤버인 톰 존스턴(기타, 보컬), 패트릭 시먼즈(기타,
왕가위 영화는 다양한 매력으로 관객을 매혹한다. 그 중 하나는 음악이다. 귀로 듣는 영화라고 해도 심한 과장은 아니다. 시를 읊어내는 듯한 대사와 매혹적인 OST. 가령 『아비정전』, 그리고 다음과 같은 대사. “세상에 발 없는 새가 있다더군. 늘 날아다니다 지치면 바람 속에서 쉰 대. 평생 딱 한번 땅에 내려앉는데 그건 바로 죽을 때지.” 남국의 숲을 배경으로 끝없을 듯 달리는 기차의 바퀴 소리, 독백, 그리고 온전히 아비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발 없는 새의 우화. 아비의 운명으로서 고독은 단지 독백에 물들어 있지만은 않다. 가령 속옷 바람으로 맘보를 추는 씬. 장국영은 온전히 아비 자체가 된다. 이때 화면 전체, 아니 관객의 영혼 한가운데를 울리는 음악이 Maria Elena다. Maria Elena는 ‘1932년 멕시코의 로렌소 바르셀라타가 대통령 영부인 마리아 엘레나 페랄타에게 헌정한 곡’으로 알려졌다. 아비정전에 나온 음악은 하비에르 쿠갓 버전이다. 베이비 붐 세대의 Maria Elena가 하나 더 있는데, 로스 인디오스 타바하라스가 기타 듀오로 연주한 「Maria Elena」다. 로스 인디오스 타바하라스는 브라질 북부 세아라 주에 사는 선주민인 타바
샌프란시스코는 일정한 이미지로 세계인들의 기억 속에 머무른다. 금문교(金門橋·Golden Gate Bridge), 안개, 스코트 매켄지, 사랑의 여름, 히피, 그리고 알프레드 히치콕. 특히 히치콕이 남긴 할리우드 영화들은 샌프란시스코의 진득한 매력을 관객들의 기억에 아로새겼다. 제임스 스튜어트와 킴 노박이 주연을 맡은 「현기증(Vertigo)」이나 로드 테일러와 티피 헤드렌이 주연한 「새(The Birds)」 같은 작품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샌프란시스코는 전아하면서도 신비한 매력으로 가득 찼다. 「새」에서 멜라니(헤드렌 분)가 차를 달린 보데가 베이의 해안 풍경은 숨이 막힐 듯 아름답다. 그곳은 정확하게는 샌프란시스코가 아니라지만. 미국프로야구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홈구장인 오라클 파크(Oracle Park)에서 승리하면 토니 베넷의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가 울려 퍼진다. 베넷과 그의 노래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는 샌프란시스코의 영혼과도 같다. 노래는 도시의 역사와 함께 깊어지고 두터워진다. 2020년 4월 25일 정오, 코로나로 인해 미국 전역의 국민들에게 자택에 머무르라는 대피
스타 DJ 김기덕이 2020년에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팝송’을 소개했는데 비틀즈의 「Yesterday」와 ABBA의 「Dancing Queen」, 그리고 Queen의 「Love of my life」다. 비틀즈의 「Yesterday」에는 토를 달기 어렵지만 나머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ABBA의 히트곡이 무수히 많은데 왜 하필 「Dancing Queen」인가? Queen의 「Bohemian Rhapsody」나「We Are the Champions」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Can't Help Falling in Love」와 「Love me tender」는 어떡할 건가? ‘한국인이 좋아하는’ 팝송이라는 전제하에 고른다면 「Holiday」도 빼놓을 수 없다. 「Holiday」라는 제목을 사용한 팝송이 두 곡 있는데 하나는 비지스, 하나는 스콜피언스가 불렀다. 음악이 좋다는 면에서나 한국인이 좋아한다는 면에서나 두 곡의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 아마 비지스의 「Holiday」가 더 익숙할 것이다. 비지스의 「Holiday」는 달콤하고, 애절하다. 마음속에 녹아드는 느낌이다. 스콜피언스의 「Holiday」는 헤비메탈 밴드가 부른 파워 발라드다. 이명세가 메가폰을 잡
사실 이 노래는 이글이글 태양이 타오르는 계절에 들어야 했다. 여름은 하루아침에 가버렸고, 우리는 추억하듯 이 노래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San Francisco」. 미국 가수 스코트 매켄지의 이름을 영원으로 이끈 시대의 명곡이다. 1996년에 크게 인기를 모은 한국 드라마 「애인」의 주제곡이기도 했지만, 사실 남녀의 개인적인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지는 않다. 노랫말을 조금 살펴보자. “샌프란시스코에 가시면 잊지 말고 머리에 꽃을 꽂으세요. 샌프란시스코에 가시면 친절한 사람들을 만나게 될 거예요. 여름에는 사랑의 집회가 열릴 거예요. 샌프란시스코의 거리에서는 사람들이 머리에 꽃을 꽂고 있어요. … 새로운 생각을 가진 세대가 모두 살고 있어요. 활기에 찬 사람들 … 그 곳의 여름은 사랑스러울 거예요.” 「San Francisco」의 노랫말은 명백하게 히피들의 이상을 반영하고 있다. 머리에 꽃을 꽂은 이들이 한여름 샌프란시스코의 거리 위에서 모든 세대와 화합해 미국을 가로지르는 강한 떨림과도 같은 운동, 집회를 벌이니까 동참하는 뜻으로 머리에 꽃을 꽂으라는 내용이다. 매켄지의 노래는 팝 음악사에 길이 남은 ‘몬테레이 페스티벌(Monterey Internat
“열정적이고 재빨리 소진되는 생명을 가진 여름이 시작되었다. 긴 낮은 찌는 듯했지만 불타는 깃발처럼 금방 타올라버렸고, 짧고 무더운 달밤 다음에는 짧고 무덥고 비 내리는 밤이 이어졌다. 꿈처럼 빠르게, 온갖 형상들로 충만하여, 열병처럼 달아오르다 사그라졌다.” 섬세하고 예민한 화가 클링조어가 어느 해 여름 자신을 찾아온 죽음의 그림자를 느낀다. 그는 남은 생명을 모두 끌어 모아 마지막 작품을 완성해낸다. 헤르만 헤세가 1920년에 발표한 「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 여름 한 달 만에 썼다는 이 소설은 고뇌하는 지성으로서 헤세와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얼굴을 겹쳐 보여준다. 그래서일까. 우리 독자들이 가장 많이 읽었을 민음사 판(版) 번역본은 고흐가 그린 「밀짚모자를 쓴 자화상」을 표지에 담았다. 헤세가 묘사한 저 여름은 올해 우리가 지나온 여름을 닮았다. 헤세의 밤, 곧 고흐의 밤은 필연코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에」 소용돌이치는 듯한 밤하늘과 별, 생명과 죽음이 교차하는 한 순간의 이미지로 연결된다. 바로 이곳에서 우리는 돈 매클레인이 노래한 「Vincent」를 느낀다. “별이 총총한 밤, 밝게 타오르는 듯 활짝 핀 꽃과 보랏빛 안개 속에 소용돌이치는 구름
'좋아해줘'는 2008년 11월 13일 발매된 인디 록밴드 '검정치마'의 첫 번째 앨범 '201'의 첫 트랙에 수록된 곡이다. 검정치마는 2004년에 미국 뉴욕에서 3인조 펑크 록 밴드로 결성되었는데 현재는 싱어 송 라이터인 조휴일 원맨 밴드로 남았다. 첫 정규 앨범 201을 발매하면서 한국에서 공식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201은 제7회 한국대중음악상(최우수 모던 록 음반 부문)을 수상하는 성공을 거두었다. 권석정 평론가는 “좋아해줘는 2004년에 만든 곡이라고 한다. (중략) 당시만 해도 한국과 영미권 록은 트렌드 면에서 갭이 컸다. 조휴일은 좋아해줘를 한국에 가지고 왔을 때 그것이 트렌디한 음악이라고는 생각은 안 해봤다고 말했다. 하지만 많은 국내 팬들, 특히 여성 팬들에게 이는 신선함 그 자체였고, 매력적인 음악이었다. 좋아해줘가 인디 록에 대한 새로운 팬덤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라고 평가했다. 날 좋아해줘 아무런 조건 없이 니 엄마 아니 아빠보다 더 서울 아니면 뉴욕에서도 어제 막 찾아온 사춘기처럼 중략 baby now i really wanna know oh oh know oh oh maybe now i really wanna know
달빛 은은한 바닷가 지난해 여름의 그 추억 모래 위를 거닐며 속삭이던 그 사랑을 그 사람은 잊었을까 조약돌 주우며 거닐던 지난해 여름의 그 추억 아름다운 꿈만을 내 가슴에 새기고 그 사람은 가버렸네 모래 발자국 너는 내 마음 알까 수평선 저 멀리 사라지는 꿈 달빛 은은한 바닷가 지난해 여름의 그 추억 모래 위를 거닐며 속삭이던 그 사랑을 그 사람은 잊었을까 모래 위를 거닐며 속삭이던 그 사랑을 그 사람은 잊었을까 이맘때 어울리는 노래. 살바토레 아다모가 1968년에 내놓은 싱글의 A면에 수록되었다. 약간은 허스키하게 들리는 호소력 짙은 목소리와 아름다운 멜로디에 얹어 부르는 아다모의 노래 스타일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곡이다. 그의 출세작인 「Sans toi ma mie」에서도 드러나는 특징이지만 아다모의 노래는 전통적인 샹송 장르에서 강조되는 가사의 문학성보다 선율의 아름다움에 기초한 음악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개성이 두드러진다. 프랑스어를 하지 않는 사람들마저 그의 노래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아다모 만의 매력이 여기에 있다. 아다모는 1943년 11월 1일 이탈리아의 시칠리아에서 태어나 4살 때 가족과 함께 벨기에로 이주했다. 12살 무렵부터 성가대에서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