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위원회가 금융회사의 무분별한 개인 연체채권 소멸시효 연장 및 부활 관행을 제한하고, 채무자 보호를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인 연체채권 관리 제도를 전면 개편한다.
금융위원회는 29일 서울 중구 서민금융진흥원에서 권대영 부위원장 주재로 ‘개인 연체채권 관리 관련 현장 간담회’를 개최하고, 이재명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현장 의견을 수렴하는 한편 금융회사의 개인 연체채권 관리 개선방안을 마련·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간담회에는 금융연구원,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신한저축은행 상근감사위원, 금융복지상담협회장, 변호사 등 민간 전문가 5인과 금융감독원, 한국자산관리공사, 서민금융진흥원, 신용회복위원회 관계자가 참석했다.
권대영 부위원장은 모두발언에서 “실업·질병 등 예측 불가한 사유로 인한 채무불이행 책임을 전부 채무자에게 짊어지게 하는 것은 과도하고 바람직하지 않다”라며 “곤궁한 채무자에게 가해지는 과도한 채무 상환 압박은 채무자의 정상생활 복귀를 방해할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채권 회수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라고 지적했다.
금융위에 따르면, 지난해 금융채무 불이행자가 7만 명 증가해 올해 5월 기준 약 92만 명에 이르고 있다. 그간 채무조정 제도 개선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연체자가 채무조정을 이용하지 않고 장기연체자가 된 상황이다. 특히 연체자가 장기 상태에 머무는 것을 막기 위해 마련된 5년의 소멸시효 제도가 지급명령 청구 등을 악용해 최장 15년까지 연장되고 있어, 제도의 본래 취지가 퇴색되고 있다.
간담회에서는 금융회사가 연체채권을 반복 매각해 고객 보호 책임에서 벗어나면서도 갚기 어려운 채무자에 대해 추심 강도를 점차 높이는 문제점이 지적됐다. 지급명령 제도를 통한 소멸시효 연장과 일부 대부업체가 시효 완성 채권에 대해 채무자의 일부 상환을 유도해 시효를 부활시키는 관행도 심각한 문제로 꼽혔다.
권 부위원장은 “대출 시 채권자와 채무자가 수평·호혜적 관계이나, 연체 단계에서는 법적 지식과 정보 면에서 개인 채무자가 채권자에 비해 큰 열위에 있다”라며 “이러한 권력 불균형을 감안해 채무자를 두텁게 보호하는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한 “공공부문 중심의 채무조정이 어느 정도 성과를 냈으나 민간 금융회사의 자체적이고 신속한 채무조정 및 채무자 재기 지원 역량이 충분히 발휘되지 못했다”라며 “연체가 많이 진행된 후 개입함에 따른 한계 때문에 채무자의 정상 경제생활 복귀가 지연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동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과거 입법과정에서 제외된 소멸시효 관련 채무자 보호 제도를 재입법해, 금융사의 무분별한 시효 연장과 시효 부활을 제한해야 한다”라고 제언했다. 최근 대법원이 58년 만에 시효 부활 관련 판례를 변경해, 채무자가 시효 완성 사실을 인지해야만 부활 의사표시가 인정된다는 점을 명확히 한 점도 소개됐다.
금융위는 이번 간담회에서 나온 의견을 토대로 소멸시효 무분별 연장 및 시효 부활 제한, 추심 및 채권 매각 관행 개선, 금융회사의 채무조정 역량 강화 등을 포함한 개인 연체채권 관리 개선책을 연내 마련해 추진할 계획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채무자 재기 지원과 금융권과 채무자의 상생 문화 정착을 위해 실효성 있는 제도 정비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