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앨범 <그녀> 는 '사랑'을 노래하는 민수와 '우리'를 노래하는 윤지영의 첫 번째 콜라보다.2 이 곡은 힘을 빼고 담담하게 읊조리듯 말하는 민수와 윤지영의 음색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어, 무한 반복해서 듣고 싶어지는 기분이 든다. 그냥 좋아서 계속 듣는 노래, 왠지 나에게 용기를 주는 노래, 무어라 정의 내릴 순 없지만 내 존재 그 자체가 소중하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은 노래, 이런 느낌이 바로 민수와 윤지영의 첫 콜라보 싱글 앨범 <그녀>다. 시적 감흥이 충분한 가사는 한줄 한줄이 모두 리스너들의 충분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마치 내가 나에게 들려주고 싶은 따뜻한 한마디를 이 음악을 통해 듣는 듯하다. 가사들의 의미는 단순히 보여지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들을 때마다 그 함축적 의미가 인상적으로 마음에 다가온다. 예쁘고 단순한 가사지만 그 내면에는 깊은 고뇌와 철학의 진정성이 숨 쉬고 있어 나도 모르게 생각에 잠긴다. 모두 같진 않아 있는 그대로를 봐봐 너의 작은 마음에 나를 가두지 마 모두 같진 않아 있는 그대로를 봐봐 너의 작은 마음에 잔잔하게 울려 퍼지는 피아노 선율의 멜로디 라인은 온기를 담기에 충분하다
캐나다 출신 래퍼 네임 UL(NAME UL)은 정밀한 리듬감과 비트, 성숙한 스토리텔링으로 예술가로서의 입지를 굳히고 있다. 그의 가사는 폭음에 대한 걱정을 드러내거나 명성과 새로운 환경을 탐구하는 등 이색적이다. 이는 리스너에게 음악을 깊게 청취하면서 고민할 기회를 안겨주기도 한다. 네임 UL의 비트는 다소 희박하고 억압돼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는 혹평이 아닌 새로운 시도로써의 긍정적인 평가다. 그가 정제된 비트로 랩을 만드는 이유는 스스로의 마음 상태를 대변하기 위해서다. 네임 UL은 생존에 대한 고찰과 본능에 대한 망각을 주제로 다룬다. 이는 정제된 리듬과 곡의 흐름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의 대표곡 ’텅 투게더(Tongue Together)‘는 고된 일상에 순응하는 본성을 비탄하는 내용으로 구성됐다. 인간의 사회적 무관심도 다룬다. 네임 UL은 주어진 것을 그대로 따르지 않는 예술가의 삶을 음악 코드로 풀어 전개한다. 네임 UL의 음악은 '내가 필요한 것은 시간이 아니다'라는 명제를 내세운다. 이는 그의 음악세계에 가장 가까우면서도 반사적인 개념이다. 빼곡하고 조밀하게 진행되는 리듬감은 전형적인 직장생활의 치열한 경쟁 속 불안감을 드러낸다. 겉으
여성의 경우 직업 앞에 ‘여성’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젠더의식의 부재는 여전히 만연하다. 인디신에서도 유독 여성 인디 뮤지션에게는 ‘여성’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왔다. 남성 뮤지션은 ‘남성 뮤지션’이라 부르지 않는데 왜 여성 뮤지션만 ‘여성 뮤지션’, ‘여성 싱어송라이터’라는 사실을 강조하는지 의구심을 품어봤다면 독립 음악 산업 구조 속 소비되는 여성의 이미지를 유추해볼 수 있다. 특히 10여 년간 사용돼 온 ‘홍대 여신’은 인디신 내 여성의 입지를 여실히 드러내는 수식어다. 이는 뮤지션의 다양한 모습과 전문적인 음악성을 ‘여신’이라는 외적 평가요소로 압축한 전형적인 대상화다. 이런 입지를 타개하기 위해 뮤지션과 그 음악 자체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이에 라온미디어는 인디 뮤지션 중에서도 여성을, 그중에서도 음악성을 조명하는 별도 섹션을 마련하고 실력파 뮤지션을 발굴한다. [편집자주] ‘일렉트로닉 뮤직’이란 신디사이저, 드럼머신 등 전자 악기를 주로 사용해 고유한 패턴을 변형시키면서 반복하는 음악을 묶어 이르는 말이다. 어쿠스틱 악기에 익숙했던 대중에겐 다소 생소할 수 있다. 또 대부분 리스너에게 일렉트로닉은 굵직하고 직선적이며 날카롭게 귀에 꽂히는 음악이라는
시대가 변하면서 다양하고 새로운 매체가 활성화됐다. 그중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발달은 자본과 전문시설이 부족한 인디음악의 홍보 시스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과거 인디뮤지션 1세대는 전봇대에 포스터를 붙이는 정도가 홍보의 전부였다. 현재는 인디뮤지션들 뿐만 아니라 주류 기획사도 대중성 확보를 위해 온라인과 모바일상 SNS 경로를 통한 상호적이고 적극적인 홍보 활동을 벌인다. █ 대중성 확보를 위한 SNS 홍보마케팅 당초 고전적인 매체를 통한 홍보는 인디뮤지션에게 그림의 떡에 가까웠다. '자본'이라는 1차원적 장벽이 가로막았기 때문. 오늘날 온라인 기술력의 가파른 발전이 있고 나서야 이들에게 홍보라는 비좁은 문을 통과하는 프리패스권이 생겼다. SNS 기술 발전은 많은 인디 뮤지션이 자신의 음악을 손쉽게 세상에 알리도록 했다. SNS는 이용자 관계망 속에서 소비자와 생산자를 밀접하게 엮어 상호 쌍방향 소통이 가능한 미디어다. 인터넷망만 있다면 자유롭게 자신의 음악을 공개하고, 리스너와 뮤지션이 소통하며 시장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알 수 있다. █ 전 세계 인구 45%가 사용하는 SNS 미 시장분석기관 '스타티스타(Statista)'에 따르면 현재 약 34억
해외 컨트리 음악은 최근 몇 년간 일종의 ‘르네상스’를 겪었다. 르네상스는 예술의 재생·부활이라는 의미를 가진 문화 부흥 운동이다. 혁신과 실험정신을 거부하며 오랫동안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완고하게 고수했던 뮤지션들이 여기에 참여했다. 이에 따라 음악 시장에는 다양한 컨트리 음악이 화려하게 재등장한다. 비주류 컨트리음악의 부흥을 외치는 움직임에는 장르 간 경계가 없다. 각자의 음악 스타일이 ‘릴나스(Lil Nas)’의 컨트리풍 팝이건, ‘콜터윌(Colter Wall)’의 신전통주의적 음악이건, ‘찰스 크로켓(Charley Crockett)’의 복고풍이건, ‘스터길 심슨(Sturgill Simpson)’의 로키스트 송가이건 관계없다. 그저 무한한 추진력으로 음악 선택지의 다양성을 리스너들에게 선물한다. 아무도 ‘로이 오비슨(Roy Orbison) & 메리 체인(Mary Chain)’이나 ‘조이 디비전(Joy Division)’, 그리고 프린지 마스킹의 퀴어 아이콘인 오어빌 펙보다 전통과 새로운 변화 사이에 전형적인 예시가 될 수는 없다. ‘트리스탄 게트워드(Tristan Gatward)’는 오어빌 펙의 데뷔 앨범인 <쇼 포니>에 대해 “펙이 ‘
생소한 앨범명으로 존재감을 드러낸 카일라 코헨은 독창적인 음색과 음악적 감각으로 리스너들을 사로잡았다. 카일라 코헨의 앨범 <이타스카(Itasca)>에는 그만의 독특한 음악적 색깔이 녹아있다. 팬들은 그의 음악을 “빈곤한 듯 풍부하면서 호화롭고도 검소하다”고 말한다. 복합적인 표현이 디테일을 유지하면서 음악적 명함을 분명하게 드러낸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앙상블은 마치 겨울이 끝나고 사막의 아지랑이가 올라오는 따뜻한 날의 상쾌함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이에 카일라 코헨의 곡은 시적인 관습에서 벗어나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향한다. 마치 산비탈을 흐르는 계곡물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전개다. 도입부에는 화음이 진행되는데 기존 화성법과는 차별화를 둔다. 관습에 얽매이거나 타협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또 코헨의 곡은 지속적으로 음악을 갈망하는 행동 자체를 표현한다. 이를 통해 멜로디는 손에 잡히지 않고 뻗어 나가지만 불협이 아닌 조화를 이뤄낸다. 가사에서도 절실한 갈망과 쉬운 해답과 힘없는 해석에 저항하고 있다. 시적 이미지로 힘을 얻는 노래들은 리스너의 마음을 자극하고 기억 속을 깊이 파고든다. 그의 곡에서는 ‘봄(Spring)’의 자유로운 멜로
마일스 데이비스 앨범 <The Best Of> 최근 국내에서도 재즈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매년 가평에서 열리는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 등 여러 지방에서 국제행사를 개최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 같은 재즈의 관심과 더불어 세계적인 재즈 아티스트들에 대해 궁금해하며 알아가는 이들도 점차 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음악 잡지인 '롤링스톤즈'는 세계적인 재즈 아티스트 10인을 발표한 바 있다. 10위는 속주로 유명한 재즈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오스카 피터슨(Oscar Peterson)'이다. 그는 1925년 8월 15일 캐나다에서 태어나 2007년 12월 23일, 향년 82세로 사망했다. 생전 200여개의 음반을 발매했으며 8개의 그래미상을 수상했다. 또 1997년 '재즈 명예의 전당'에 헌액됨은 물론 2000년 '유네스코 음악상'도 수여했다. 대표곡으로는 '스위트 조지아 브라운(Sweet Georgia Brown)' 등이 있다. 9위는 창의적인 재즈 피아니스트 '빌 에반스(Bill Evans)'이다. 그는 1929년 08월 16일 미국에서 태어나 1980년 09월 15일, 향년 51세로 사망했다. 인상파적인
다수 대학이 K-pop 인기 상승에 실용음악과를 신설했으며 매년 3000여명 졸업생을 배출하고 있다. 이 많은 졸업생은 포화 상태인 가요계 입성을 위해 기획사 연습생으로 들어가거나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제한적인 기회 속에서 성공은 둘째치고 대중들에게 이름조차 알리기 쉽지 않은 실정이다. 따라서 진입장벽이 다소 낮은 인디 음악씬으로 출발점을 정하는 뮤지션이 많아졌다. ■인디 뮤지션의 음악 활동 대형기획사에 들어가지 못한 수많은 뮤지션은 어떤 전문적인 서포트와 자본 없이 1인 레이블이나 간단한 홈 리코딩으로 작업해 인디 음악시장에 진입하고 있다. 소수 기획사가 장악한 대중음악 속에서 인디 음악은 음악 산업 저변 확대와 다양성 측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음악 활동을 영위하기에는 많은 사회적 경제적 허들이 존재한다. 인디뮤지션들의 음악 활동 횟수는 곧 이들의 수입이다. 공연과 행사가 수입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수입 배분에 분쟁이 끊임없다. 대부분이 열악한 음악 활동 실정을 무저항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처지다. 홍대 일대에서 활동하는 인디밴드 액시머는 "인디 음악 활동을 하고 5년까지는 공연·버스킹·행사 등 모든 활동
1990년대는 매체의 격변기다. 컴퓨터가 주요 매체가 되면서 인디음악의 향유에도 변화가 생겨났다.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등 대표적인 PC통신에는 음악 애호가들 이를 매개로 동호회를 형성했다. 허술한 장비가 있는 클럽에 밴드들이 등장하고, 전봇대에는 공연포스터가 붙기 시작했다. 그리고 음반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동호회의 음악 애호가들은 인디뮤지션이 됐다. 크라잉넛, 델리스파이스, 자우림, 노브레인(사진=록스타뮤직앤라이브) ▉ 인디밴드의 다양성과 창의성 인디뮤직은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한 시기에 거대자본과 스타 양산 시스템인 주류와는 달리 자신들의 음악 세계를 ‘음악의 진정성’이라는 정의 하에 대안적인 시스템으로 출발한 개념이다. 홍대 주변에서 실험적인 음악을 하며 소규모 공연과 입소문으로 대중들에게 인지도를 얻었다. 이에 홍대 일대는 ‘크라잉넛’, ‘노브레인’과 같은 1세대 밴드를 중심으로 펑크 록 공연 장소로써 이에 영향을 받은 인디밴드들이 합세해 오늘날 '버스킹'의 주 활동 무대로 자리매김했다. 한 잡지사에서 주최한 ‘스트리트 펑크 쇼’는 당시 대중들 사이에 새로운 음악 스타일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인디밴드의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냈다. 공연장에서의
펑크록은 영국과 미국에서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유행하면서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동시기 국내에서는 1975년 ‘유신체제’가 들어서면서 정부의 심의 강화로 전체적인 공연예술계가 침체됐다. ‘가요정화운동’이라는 엄격한 검열제도하에 음악 활동은 물론이고 수입되는 해외 음악 또한 철저하게 검수됐다. 이후 1980년대 중후반에는 금지됐던 영미의 다양한 음악이 CD 형태로 반입됐다. 국내 대중음악가들은 펑크록 뮤지션의 음악을 자신들의 모티브로 삼아 곡을 카피하거나 다른 스타일 음악을 접목해 연주를 하는 등 밴드 구성의 음악 흐름을 형성했다. ▉ 1970년대 : 인디의 서광, 언더그라운드 이 시기 밴드 뮤지션 혹은 1인 뮤지션들은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이라 불린다. 따라서 이 시기를 ‘언더그라운드의 시대’라고도 부른다. 언더그라운드는 우리말로 표현하자면 지하(地下)라는 뜻이 된다. 이는 지상(地上)으로 비유되는 상업적 대중음악 세계, 즉 주류에 반하는 비주류를 뜻한다. 지상으로 올라가지 못하거나 오르기를 원치 않는 비주류, 마이너(minor), 대안(alternative), 인디(indie)로 이름은 다르지만 같은 의미가 있다. 이 시기 음악은 공감대를 형성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