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인위적으로 만들어놓은 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마음속에도 길이 있다. 밝은 길과 그늘진 길이 있듯이 우리의 마음속 길 역시 두 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빛의 길이고 또 다른 하나는 어둠의 길이다. 어느 길을 택할 것인가, 하는 것은 자신이 선택할 문제다.
일 년 전, 막 빛의 길로 걸어 나오고 있던 황영웅 가수를 일부 몰지각한 개인 유튜브와 지상파 언론에서 가짜뉴스를 퍼뜨림으로써 그를 한순간에 어두운 굴속으로 밀어 넣었다. 이들은 또 황영웅 가수의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중장년층이 많은 것에 대해서도‘무지한 노인들의 아둔한 팬심’이라고 폄훼하는 표현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런 부류는 마음이 어두운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의 눈에는 빛보다 어둠이 먼저 들어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어두운 굴속에 갇혀있던 황영웅 가수를 빛의 길로 이끈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황영웅 가수가 지닌 순수성과 천재성을 알아본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이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의 눈에는 어둠보다는 빛이 먼저 보이기 때문이다.
빛과 어둠은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말속에도 담겨있다. 예를 들어 다리를 저는 사람을 보면, 어떤 이는 “저 사람은 다리 하나가 짧다”고 한다. 또 어떤 이는 “저 사람은 다리 하나가 길어 보이군”이라고 한다. 짧다고 하든 길다고 하든 결국 다리를 저는 모습을 표현한 건 같다. 하지만 다리가 짧다는 말에는 비하하는 느낌을 담고 있다. 다리가 길다고 하는 표현에는 비하하는 느낌이 사라지게 된다.
같은 상황에 직면하면서도 이처럼 각기 다른 느낌을 표현하게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비하하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 사람은 그 자신의 마음속이 어둠이 덮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반면에 긍정적인 표현을 즐겨 사용하는 사람은 그 자신의 마음속에 빛으로 재워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분석심리학의 창시자인 칼, 융은 인간의 내면 깊숙이 자리한 집단무의식의 한 요소로 페르소나를 꼽는다. 페르소나는 배우들이 극 중에서 썼다 벗었다 하는 가면을 말한다.
인간은 누구나 가면을 쓴 배우와 같다. 흔히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이나 신념, 그리고 가치관 등이 그 자신의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다. 엄밀히 말해 가면은 참다운 그 자신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가 개인에게 주어지는 가면일 뿐이다.
예를 들어 기자 혹은 방송 진행자 신분은 모두 그 자신이 아니다. 단지 신문사 혹은 언론사 측에서 씌워놓은 가면일 뿐이다. 그들의 마음속에 빛이 있느냐 어두운 그림자가 있느냐에 따라서 시청자 혹은 독자에게 빛을 전하기도 하고 어둠도 전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일부 몰지각한 유튜브와 언론사가 벌였던 어둠의 잔치는 끝났다. 현재 황영웅 가수는 전국을 돌며 콘서트 중이다. 콘서트장마다 그를 보러 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이는 곧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이 한결같은 마음으로 황영웅 가수를 찬란한 빛의 길로 이끈 결과다.
어쩌면 우리는 매일 우리 안에서 빛의 길을 가고자 하는 힘과 어둠의 길을 고집하는 힘과 싸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길은 가고자 하는 사람에게 선택할 권리도 주지만 책임도 따르게 된다.
새해에는 우리 모두 서로에게 빛의 세계로 이끄는 한 해가 됐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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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원 소설가 프로필
▲학력
단국대학교 국어국문 졸, 문예창작대학원 석·박사 졸
▲등단
2017년 소설 『마지막 수유 시간』
▲수상경력/상훈
1998년 서울시 주최 제 2회 서울 이야기(서울 시장상)
1998년 월간 수필문학 『내 가슴속의 가을』로 등단
2017년 전북일보 신춘 당선
▲작품/저서
2011년 푸른사상 『융, 오정희 소설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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