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백과] 1990년대 인디 음악의 태동과 역경.."매체 격변기·IMF 시류와 맞물려"

소중하고 행복한 기억의 소환시키는 따뜻한 목소리와 선율

1990년대는 매체의 격변기다. 컴퓨터가 주요 매체가 되면서 인디음악의 향유에도 변화가 생겨났다.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등 대표적인 PC통신에는 음악 애호가들 이를 매개로 동호회를 형성했다. 허술한 장비가 있는 클럽에 밴드들이 등장하고, 전봇대에는 공연포스터가 붙기 시작했다. 그리고 음반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동호회의 음악 애호가들은 인디뮤지션이 됐다.
 

 

▉ 인디밴드의 다양성과 창의성

인디뮤직은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한 시기에 거대자본과 스타 양산 시스템인 주류와는 달리 자신들의 음악 세계를 ‘음악의 진정성’이라는 정의 하에 대안적인 시스템으로 출발한 개념이다. 홍대 주변에서 실험적인 음악을 하며 소규모 공연과 입소문으로 대중들에게 인지도를 얻었다. 이에 홍대 일대는 ‘크라잉넛’, ‘노브레인’과 같은 1세대 밴드를 중심으로 펑크 록 공연 장소로써 이에 영향을 받은 인디밴드들이 합세해 오늘날 '버스킹'의 주 활동 무대로 자리매김했다.

한 잡지사에서 주최한 ‘스트리트 펑크 쇼’는 당시 대중들 사이에 새로운 음악 스타일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인디밴드의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냈다. 공연장에서의 폭발적인 열기는 새로 접하는 음악이라는 신선함으로 대중들과 언론·방송매체들의 호평을 받았다. 또 홍대뿐만 아니라 점점 외부로부터 자신들을 알리기 위한 활동을 진행했다. 첫 라이브 인디 앨범인 <Our Nation>은 스플릿 앨범을 제작했다. 인디밴드들은 활발하게 라이브 공연을 펼치며 꾸준히 앨범을 제작했다.

인디 뮤지션들은 펑크뿐만 아니라 하드코어, 브릿팝, 모던록, 일렉트로니카와 힙합 등 다양한 음악 세계를 선보였다. 획일화되고 스타상품에 주력하는 주류에서 결여된 예술적 다양성과 창의성이 이 시기 홍대 앞을 중심으로 인디밴드 음악에서 보였다.

▉멀어지는 관심과 IMF 위기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인디밴드의 이목 끌기식 퍼포먼스는 젊은 사람들의 새로운 유흥문화로 여겨졌다. 독창적이고 개성 강한 실험적인 괴상한 음악이라는 편견과 아마추어들 음악, 마니아층들 음악, 언더그라운드 음악, 대체 음악 등으로 인식되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점차 줄었다.

특히 1997년 IMF를 맞으면서 직면한 경제 위기는 음악계에도 타격을 입혔다. 인디 뮤지션은 공연활동 기회가 없어 생존조차 위협받았다. 그와 동시에 1세대 인디밴드 뮤지션들의 군입대 등 문제로 인디음악에 포함된 펑크록은 자연스럽게 공백기가 생겼다. 그로 인해 펑크록은 몇몇 소수의 사람만 관심을 두는 비주류음악으로 자리잡았다. 이렇게 1990년대 펑크는 IMF로 인해 난폭하게 재구조화되는 사회의 현실 앞에서 설득력을 잃어가게 됐다.

(자문 : 백석예술대학교 공연기획연출과 이은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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