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백과] 1970·80년대 인디의 서광 '언더그라운드 시대'

펑크록은 영국과 미국에서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유행하면서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동시기 국내에서는 1975년 ‘유신체제’가 들어서면서 정부의 심의 강화로 전체적인 공연예술계가 침체됐다. ‘가요정화운동’이라는 엄격한 검열제도하에 음악 활동은 물론이고 수입되는 해외 음악 또한 철저하게 검수됐다. 이후 1980년대 중후반에는 금지됐던 영미의 다양한 음악이 CD 형태로 반입됐다. 국내 대중음악가들은 펑크록 뮤지션의 음악을 자신들의 모티브로 삼아 곡을 카피하거나 다른 스타일 음악을 접목해 연주를 하는 등 밴드 구성의 음악 흐름을 형성했다.
 
▉ 1970년대 : 인디의 서광, 언더그라운드
 
이 시기 밴드 뮤지션 혹은 1인 뮤지션들은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이라 불린다. 따라서 이 시기를 ‘언더그라운드의 시대’라고도 부른다. 언더그라운드는 우리말로 표현하자면 지하(地下)라는 뜻이 된다. 이는 지상(地上)으로 비유되는 상업적 대중음악 세계, 즉 주류에 반하는 비주류를 뜻한다. 지상으로 올라가지 못하거나 오르기를 원치 않는 비주류, 마이너(minor), 대안(alternative), 인디(indie)로 이름은 다르지만 같은 의미가 있다. 이 시기 음악은 공감대를 형성하는 가사가 특징이다.
 

 

▉ 1970년대 : 국가의 통제, 저항의 아이콘 언더그라운드

동시기 국내 정치적 상황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군사정권이었다. 군사정권은 음악적인 규제를 단행했고 언더그라운드 음악도 이를 따라야 했다. 몇몇 뮤지션은 장소를 옮겨 다니면서 활동했지만 규제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미미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군사정권시기에는 음반에 대한 ‘사전심의제도’와 방송에 대한 ‘사후심의제도’로 국가가 음반발표 및 방송 출현을 엄격히 규제했기 때문에 한국 뮤지션들은 자유롭게 활동하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뮤지션들은 1970~1980년대 언더그라운드의 고향이던 신촌이 상업지구로 변하자 하나둘씩 홍대부근으로 옮겨와 즉자적으로 음악활동 공간을 만들었다. 뮤지션뿐만 아니라 대중도 군사정권의 억압으로부터 자유를 원했다. 대중들은 신촌과 홍대 언더그라운드 가사에 공감하며 억압적인 시대를 극복할 힘을 얻었다. 이런 측면에서 국내 언더그라운드는 국가의 강압적 통제에 대한 저항적 의미가 있는 특수성을 가졌다.

▉ 1980년대 : 언더그라운드 전성시대

1970년대 언더그라운드의 창시자 싱어송라이터 조동진(1947~2017)과 이정선(1950~)이 포크 음악뿐만 아니라 록이나 퓨전재즈 등 다양한 실험적 음악을 시도했다. 1980년대 이후 기확사 형태를 띤 음반사가 등장했다. 신촌뮤직, 대성음반, 뮤직디자인 등이 언더그라운드 음반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1985년 언더그라운드 록밴드 ‘들국화’가 음반 판매 흥행을 기록하고 성공을 거두면서 해바라기, 시인과 촌장, 한영애, 김광석 등이 지상파에 출현하지 않으면서 음반 제작과 라이브공연을 하는 형태의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인디음악은 이렇듯 한국적 특색의 언더그라운드 음악으로 시작해 대중적 성공을 거두고도 TV출연을 자제했다. 이를 통해 대중과의 일정한 거리를 두는 인디의 속성을 유지하려는 형태로 발전해왔다. 이후 인디음악은 미디어 발전에 힘입어 다양한 채널로 확산됐다.

(자문 : 백석예술대학교 공연기획연출과 이은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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