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소변검사 뒤에 숨은 수십 년 관행, 정부가 칼 뺐다

  • 등록 2025.10.14 07:4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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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할인 경쟁이 낳은 '부실 검사' 우려…위탁관리료 폐지·분리 청구 추진
의료계 "현실 무시한 조치" 반발…자정 노력 부족 비판도 나와

 

병원에서 흔히 받는 피검사나 소변검사. 정확한 진단과 치료의 첫걸음인 이 검사들의 신뢰도를 위협하는 수십 년 묵은 관행에 정부가 드디어 칼을 빼 들었다.

 

검사를 의뢰하는 동네 병의원과 이를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검사센터 사이의 비정상적인 비용 정산 구조를 바로잡아, 최종적으로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의료계는 현실을 무시한 조치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해묵은 관행 개선을 둘러싼 진통이 예상된다.

 

14일 의료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최근 논란이 돼온 검체검사 위탁검사관리료(이하 위탁관리료)를 폐지하고, 위탁기관(병의원)과 수탁기관(검사센터)이 검사 비용을 각각 청구하는 '분리 청구'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입장을 공식화했다. 이는 내년 시행을 목표로, 이르면 다음 달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상정될 예정이다.

 

문제의 핵심은 병의원과 검사센터 간의 고질적인 비용 정산 관행이다. 현재 건강보험은 혈액검사 등에 드는 비용(검사료)의 110%를 검사를 의뢰한 병의원에 지급한다. 병의원은 이 중 10%의 관리료를 제외한 100%를 검사를 진행한 검사센터에 보내주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수많은 검사센터가 병의원과의 계약을 위해 이 검사료의 상당 부분을 할인해주거나 계약에 따라 일부를 되돌려주는 방식이 시장의 오랜 관행으로 자리 잡았다.

 

이런 과당 경쟁은 검사 품질 저하라는 심각한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무리한 비용 할인으로 수익성이 나빠진 검사센터들이 최신 장비 도입이나 전문 인력 충원 같은 재투자에 소홀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노후 장비로 검사가 이뤄지면서 정확도가 떨어지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부정확한 진단 결과를 받을 수 있는 환자에게 돌아갈 위험이 상존해왔다.

 

환자 안전과 직결된 문제임에도, 그간 보건당국이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 속에서 이를 사실상 방치해왔다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추가로 주어지던 10%의 위탁관리료 조항을 없애고, 총 지급액을 100%로 정상화한다. 그리고 이 100%의 비용을 병의원과 검사센터가 각각 정해진 비율만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 직접 청구하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기관 간의 불투명한 자금 흐름을 원천적으로 차단해 시장을 투명하게 만들겠다는 강력한 의지다.

 

복지부 측은 "거래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이는 것이 목표"라며 제도 개선 후에도 시장이 정상화되지 않을 경우 처벌 규정까지 검토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하지만 의료계의 반발은 거세다. 대한의사협회는 "의료계와 충분한 협의를 거치겠다는 약속을 깨고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책을 추진하며 신뢰를 훼손했다"고 비판했다. 문제의 근원은 검사센터들의 과열 경쟁인데, 정부가 그 책임을 병의원에 전가하며 전체 의사를 부도덕한 집단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주장이다.

 

의료계는 또한 현재의 관리료가 피를 뽑고 검체를 보관하며 결과를 환자에게 설명하는 데 드는 행정 비용과 노력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는 비현실적인 수가라고 지적한다. 근본적인 수가 체계를 바로잡지 않은 채 제도를 바꾸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처사라는 것이다.

 

그러나 수십 년간 이어진 기형적인 정산 구조 속에서 검사의 질 저하 문제가 꾸준히 제기됐음에도, 의료계 내부에서 이를 개선하려는 자정의 노력이 부족했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수가 문제와는 별개로, 환자의 안전이라는 최우선 가치가 기관 간의 거래 관행 속에서 후순위로 밀려난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민의 건강과 직결된 검사의 정확성을 담보하기 위한 정부의 개혁 의지가 의료계의 반발을 넘어설 수 있을지 주목된다.(연합뉴스)

권혜진 rosyriver@rao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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