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런던의 한 갤러리에서 '얼굴 없는 작가' 뱅크시의 유명한 작품 '풍선과 소녀'를 훔친 도둑이 유리문을 깨고 들어와 그림을 들고 달아나는 데에는 채 1분이 걸리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16일(현지시간) 영국 BBC 방송 온라인판에 따르면 지난해 9월 8일 런던 중심가의 그로브 갤러리에서 뱅크시의 작품 '풍선과 소녀'(Girl with Balloon)를 훔쳐 달아난 혐의로 기소된 래리 프레이저(48)가 최근 열린 재판에서 유죄를 인정했다.
킹스턴 크라운 법원에서 열린 재판에서 갤러리 대표 제임스 라이언 씨는 당시 촬영된 CCTV 영상을 확인한 결과 마스크를 쓴 괴한이 유리문을 깨고 들어와서 작품을 훔쳐 달아나는 데 걸린 시간은 36초였다고 진술했다.
작품 '풍선과 소녀'는 한 소녀가 멀리 날아가는 하트 모양의 빨간 풍선을 향해 손을 뻗고 있는 모습을 담은 그림으로 뱅크시는 이 작품을 벽화와 회화 등으로 여러 점을 제작했다.
법원 기록에 따르면 도난당한 작품이 2004년 인쇄된 것으로, '풍선과 소녀'의 150개 한정판 중 하나로, 일련번호는 72번이다. 개인 소장자 소유의 이 작품의 가치는 약 27만파운드(약 5억원)으로 알려졌다.
이 작품은 도난된 뒤 곧바로 회수돼 갤러리에 반환됐다.
프레이저의 절도 행위를 도운 혐의로 함께 기소된 제임스 러브(54)는 무죄를 주장해 검찰과 변호인 측의 공방이 이어질 예정이다.
검찰은 '풍선과 소녀'를 다수 갖고 있는 러브가 도난 당일 아침에 그로브 갤러리로 차를 몰고 와서 프레이저가 작품을 훔친 직후 이를 다른 장소에 은닉·보관하는데 도움을 줬다고 보고 있다.
검찰은 성공한 건설업자인 러브가 '풍선과 소녀'를 더 소장하고 싶어서 프레이저와 범행을 모의한 것으로 보고 그를 기소했다. 범행 당일 그가 프레이저에게 200파운드(약 38만원)를 송금한 사실도 확인됐다.
얼굴과 신원을 공개하지 않아 '얼굴 없는 작가'로 불리는 뱅크시는 전 세계 도시의 거리와 벽 등에 그라피티(낙서처럼 그리는 거리예술)를 남기는가 하면, 유명 미술관에 자기 작품을 몰래 걸어두는 등의 파격적인 행보로 유명한 예술가다.
특히 난민과 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를 옹호하고, 기득권 정치세력이나 자본가 계급을 향해 날카로운 비판의 메시지를 담은 작품을 기습적으로 그리거나 설치한 뒤 사라지는 활동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지 오래다.
최근에는 판사가 무장하지 않은 팔레스타인 시위자를 법봉으로 내려 치려는 모습을 런던 왕립법원 외벽에 그린 뒤 사라지기도 했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