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회사의 경영진 내부통제 책임을 명확히 하기 위해 도입된 ‘책무구조도’ 제도가 본격 시행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시범운영 과정에서 하위임원에 대한 책임 전가, 책무의 중복 배분, 대표이사-이사회 의장 겸직 등 구조적 미비점이 대거 드러났다.
금융감독원은 “내부통제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각 임원별 책임을 명확히 하고, 실질적 견제·균형 체계를 갖춰야 한다”라며 강력한 개선을 주문했다.
금융감독원은 7월부터 자산 5조원 이상 대형 금융투자회사 및 보험사 67곳을 대상으로 책무구조도 제출을 의무화한다. 이번 시범운영에는 53개사가 참여했으며, 금감원은 이들에 대한 컨설팅 결과를 26일 발표했다.
시범운영 결과 상당수 금융회사에서 실질적 의사결정권이 없는 하위 임원(본부장 등)에게 내부통제 책임을 떠넘기거나, 상·하위 임원 모두에게 중첩적으로 책무를 부여해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지는 사례가 적발됐다.
예를 들어, 한 보험사는 부문장과 본부장, 소그룹장 등 3중 구조로 책무를 중복 배분해 내부통제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모호했다. 또 다른 회사는 그룹장과 본부장 모두에게 동일한 내부통제 책임을 부여해 실제 책임 소재가 흐려졌다.
금감원은 “상하위 임원의 업무가 일치하면 상위 임원에게 책임을 배분해야 내부통제가 효과적으로 작동한다”라고 강조했다.
53개 대형 보험·금투사 중 25개사(47.1%)는 대표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겸직하고 있었다. 증권·운용사 27곳 중 11곳(40.7%), 보험사 26곳 중 14곳(53.8%)이 해당된다.
금감원은 “대표이사는 내부통제 등 집행·운영 책임을, 이사회 의장은 대표이사의 관리의무 이행을 감독해야 하는데, 겸직 시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우려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실제 한 회사는 이사회 산하 내부통제위원회를 전원 사외이사로 구성해 이해상충 방지 대책을 마련했다.
관리대표와 영업대표 등 2인 최고경영자(CEO) 각자대표제도를 운영하는 8개사에서는 책무 배분 기준이 제각각이었다.
금감원은 “전사적 관리가 필요한 사항은 관리대표에게, 각 대표의 소관업무와 직접 관련된 사항은 해당 대표에게 배분하는 등 책무의 성격과 대상을 기준으로 배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권고했다.
일부 금융사는 비상임이사 전체를 책무 배분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실질적으로 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장(사내이사)에게도 ‘전결권 없음’을 이유로 책무를 부여하지 않는 등 주요 임원에 대한 책임 배분 누락 사례도 적발됐다.
금감원은 “상근 여부나 전결권한 유무를 불문하고, 책무 관련 업무를 수행·감독하는 임원에게는 반드시 책임을 배분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금감원은 “책무구조도 도입은 경영진 내부통제 책임을 하부로 위임할 수 없다는 원칙을 구현하고, 임직원 내부통제 인식 전환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아직 도입 초기 단계로 실효성 있는 운영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라고 덧붙였다.
금감원은 업권별 시행 일정에 맞춰 준비 현황 점검, 설명회 개최, 운영 실태 점검 등을 통해 제도의 안정적 안착을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 6월 19일에는 금융투자협회에서 대형 금투·보험사 실무자를 대상으로 책무구조도 설명회도 개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