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버스 노사가 임금 인상안에 합의하면서 파업이 끝나고 정상 운행을 시작했으나 급격히 불어날 인건비가 고스란히 시민 부담으로 이어지게 돼 준공영제 개편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15일 서울시와 업계에 따르면 서울시버스노동조합과 사측인 서울시버스운송사업조합은 전날 서울지방노동위원회가 개최한 임금·단체협약(임단협) 협상을 타결했다. 이에 따라 지난 13일부터 이틀간 이어진 파업은 중단되고 버스는 이날 운행을 재개했다.
양측은 임금을 2.9% 인상하면서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하는 동아운수 2심 판결 취지에 맞춘 임금 체계 개편은 판결 확정 이후로 미루기로 했다. 임금 체계 개편을 유예하고 3% 이상 임금을 인상해달라는 노조의 요구가 거의 모두 관철됐다.
첫 협상에서 서울지노위가 중재안으로 제시한 임금 인상률 0.5%와 비교해도 노조 요구안을 사실상 수용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문제는 임금 인상률과 별개로 추가 임금 인상이 사실상 예정돼 있다는 점이다. 현재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는 통상임금 소송이 확정될 경우 적어도 7∼8%, 많게는 16%가량의 임금 인상 효과가 기대되는 것을 고려하면 전체 인상률은 최고 20%에 달한다.
2024년 기준 서울 시내버스 노조에 가입한 이들의 평균 급여는 월 527만원, 연봉은 6천324만원으로, 통상임금 판결이 나오면 평균 연봉이 적게는 6천900만원대, 많게는 7천500만원대가 된다.
앞서 협상을 완료한 다른 지역에서는 향후 나올 판결에 따른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해 그 결과까지 포괄하도록 임금 체계를 개편해 10% 안팎의 인상안에 합의했는데, 서울의 경우 노조의 주장에 따라 이 문제를 유예해 향후 갈등의 불씨를 남겼다.
이처럼 노조가 협상에서 사실상 일방적으로 승리한 것은 협상의 실질적 주체가 서울시라는 점과 무관치 않다.
서울시는 2004년 전국 지자체 최초로 시내버스 준공영제를 도입했다. 민간 운수회사가 서비스를 공급하는 형태를 종전대로 유지하되 버스 운송으로 발생한 수입금은 업체와 지자체가 공동 관리하고, 적자가 발생하면 지자체가 재정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이 때문에 노사 협상이 결렬되고 파업에 돌입하자 여당의 예비 서울시장 후보들은 즉각 서울시에 책임이 있다며 비판했다. 오세훈 시장은 "중재자로서 타결을 위해 끝까지 설득과 조정에 나섰다"고 말했다.
첫 협상에서 0.5% 인상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던 사측이 두 번째 협상에선 2.9% 인상을 수용한 것은 서울시와의 교감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한 결정이었다. 사실상 적자를 보전해주는 시 재정 없이는 노조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기 때문이다.
준공영제는 기존의 민영제에 비해 서비스 질을 향상하고 지하철과의 환승을 가능하게 하며 운행의 공공성을 확보하는 등 여러 장점이 있지만, 매년 막대한 시 예산을 들여 운수회사들의 적자를 보전함에 따라 경영이 방만해진다는 한계도 있다.
작년 서울시가 운수업체들에 지원한 금액은 4천575억원(추정치)으로 전년도(4천억원)보다 10% 이상 뛰었다. 코로나 시기인 2023년 8천915억원으로 최고를 기록했고, 2022년 8천114억원, 2021년 4천561억원 등 매년 수천억원이 투입됐다.
서울시는 2024년 운송수지 적자를 정산 후 보전하던 기존 '사후정산제'를 개선해 2025년부턴 예상 적자액을 정해 그 액수만큼만 지원하는 '사전확정제'로 전환해 재정 부담을 줄이려 했지만, 적자가 불어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향후 대법원에서 통상임금 판결이 확정되고 임금이 최종적으로 20%가량 오르게 되면 버스회사들의 적자 폭은 급격히 불어나게 되고, 결국 요금을 올리거나 시 재정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노조가 파업을 통해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선례를 남긴 만큼 앞으로의 임금 협상에서도 파업으로 인한 시민 불편과 급격한 임금 인상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한계를 드러낸 준공영제를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군에 꼽히는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이번 파업은 단순한 임금 협상을 둘러싼 노사 간의 갈등이 아니라 공공의 안정성과 민간의 효율성 사이에서 균형을 잃은 현행 준공영제의 구조적 한계를 그대로 드러내는 단적인 사례"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노선의 특성과 수요에 따라 민영제와 공영제를 보다 명확히 구분하는 이원화 모델도 진지하게 검토할 시점"이라며 "준공영제 재정 지원은 단계적으로 줄여 나가되, 마을버스 노선을 확대하고 기존 노선이 닿지 않는 지역에는 공공버스를 통해 기본적인 이동권을 보장하는 방식"이라고 제안했다.
시민단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이날 입장문에서 "요금과 세금으로 운영되는 준공영제 체계에서 시민의 이동권이 파업 때마다 사실상 볼모가 되는 현실은 결코 정상일 수 없다"며 "노사 갈등을 넘어 제도의 실패이자 행정의 책임 방기"라고 비판했다.
경실련은 "지원 방식에 상한을 두고, 노사와 서울시가 공동으로 책임지는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며 "안전·정시성·혼잡도·수요 대응·민원 개선 등을 성과 지표로 만들고 성과에 따라 지원이 달라지는 연동체계를 즉각 도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