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회사들이 인공지능(AI)을 도입하는 업무가 고객 상담과 문서 요약을 넘어 대출 심사와 보험 인수심사, 광고 심의 같은 핵심 영역으로 넓어지고 있다. 은행은 여신 심사보고서 초안 작성을, 보험사는 가입 심사와 보험금 1차 심사를 AI에 맡기기 시작했고 카드사는 부정사용 의심 거래 심사에 AI를 접목하고 있다. 다만 대출 승인은 여전히 직원이 결정하고 보험사들도 자동 처리 대상이 아닌 건은 심사 인력이 직접 검토한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BC카드는 지난달 29일 리걸테크 스타트업 에이투디투(A2D2)와 법률 AI 플랫폼 구축 업무협약을 맺고 계약서 검토와 광고물 심의 등 준법업무에 AI를 적용하기로 했다. AI 결과의 정확성을 검증할 평가 기준과 통제체계를 함께 설계하고 업무 효율성과 정확성, 안정성을 따진 뒤 정식 도입 여부를 정할 계획이다. 회원사와 관계사로 적용 범위를 넓히는 방안도 협의한다.
오성수 BC카드 상무는 "금융사에서 생성형 AI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업무 편의성뿐 아니라 정확성과 보안, 내부통제 기준까지 함께 충족하는 것이 중요하다"라며 "계약 검토와 광고 심의 등 실제 준법업무에서 AI의 활용 가능성을 검증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연합회는 지난 5월 말 업스테이지와 계약을 맺고 은행권이 공동으로 쓰는 AI 광고심의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광고안과 상품설명서, 약관을 함께 분석해 문서 간 내용이 일치하는지, 법령과 심의 기준을 지켰는지 검토하고 보완 사항을 보고서로 정리한다. 최종 판정은 종전처럼 전문 인력이 맡는다.
은행연합회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모바일 앱을 통한 금융 광고가 늘고 비금융사와의 제휴로 광고 유형도 다양해지자 AI 도입을 추진했다. 6개월가량 개발과 시험 운영을 거쳐 시스템을 정식 도입하고 준법지원 업무 전반으로 활용 범위를 넓힐 예정이다. KB국민카드도 사내 AI 에이전트 개발을 추진하면서 홍보물에 금칙어가 들어갔는지, 필수 고지사항이 빠졌는지 점검하는 기능을 넣기로 했다. 삼성생명은 임직원이 고객 안내 콘텐츠를 작성하고 검토할 때 어려운 금융·전문 용어를 쉬운 말로 바꾸고 표현을 통일해 주는 생성형 AI 기반 'AI CX(고객경험) 글쓰기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 여신·보험 심사부터 리서치까지 AI 도입 잇따라
하나은행은 기업의 재무제표와 업체 정보, 산업 동향을 분석해 신용평가 심사의견 초안을 작성하는 시스템을 자체 개발해 전 영업점에 도입했다. 직원이 평균 30분 이상 걸려 작성하던 서술형 의견 초안을 약 10초 만에 만들 수 있어 연간 약 7만건에 이르는 기업 신용평가 업무에서 약 2만 7000시간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하나은행은 추산했다. 가계 신용대출 심사보고서 초안도 AI가 작성하고 있으며 담보대출과 전세대출로 대상을 넓힐 방침이다.
신한은행은 업체현황과 재무정보, 산업동향 등을 분석해 법인 여신 의견서 작성에 필요한 정보를 통합 제공하는 생성형 AI 기반 '여신심사지원 에이전트'를 도입했다. 제조업과 소프트웨어 개발 공급업 등 12개 주요 산업에는 업종 특성을 반영한 재무 분석 로직을 적용했다. 투자은행(IB) 거래 계약서와 인출증빙, 집합건물 감정평가서 점검에도 AI를 활용하고 있다.
한국산업은행은 전자공시(DART) 자료를 정제해 재무 리스크와 추가 검토 사항을 담은 재무분석 보고서를 자동으로 작성하는 AI 에이전트를 구축했다. NH농협은행은 사전심사와 심사보고서 작성 자동화 기능을 갖춘 AI 기반 기업여신 심사체계를 도입했다.
우리은행은 고객관계관리(CRM)와 기업여신, 자산관리, 내부통제, 고객상담 등 29개 핵심 업무에 AI 에이전트 175개 이상을 도입하는 사업을 지난 5월 시작했다. 올해 말까지 90여개를 먼저 구축하고 내년 8월까지 순차적으로 늘린다. 정부의 생산적 금융 기조에 따라 기업대출 심사 부담이 커질 것이라는 전망도 은행들이 여신 업무부터 AI를 도입하는 배경으로 꼽힌다.
현대해상은 가입 여부를 가리는 인수심사(언더라이팅)에 AI 자동심사 시스템 '2Q-PASS'를 적용해 지난해 말 기준 전체 보험계약의 52.3%를 자동으로 심사했다. DB손해보험은 기본정보 입력과 질병 고지 확인 등에 평균 40분가량 걸리던 사전 인수심사 시간을 AI 도입 이후 약 10분으로 단축했다. 지난달 15일에는 고객이 제출한 첨단안전장치(ADAS) 증빙 이미지를 생성형 AI로 자동 판독하는 서비스를 선보이고 스마트크루즈컨트롤(SCC)과 전방충돌경고장치(FCA) 등 할인특약 계약 업무에 우선 적용하기로 했다.
미래에셋생명이 지난 6월 가동한 대규모언어모델(LLM) 기반 'AI-FIT'은 설계사가 고객의 치료 이력을 문장으로 입력하거나 진단서를 첨부하면 표준질병사인분류코드(KCD)와 청약서 질문 답변을 추출해 심사 결과를 즉시 제시한다. 흥국생명은 차세대 시스템에 AI 질병 심사 모델을 적용해 자동심사율을 90% 이상으로 높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표준 조건 계약은 시스템이 처리하고 기저질환자나 고액 계약, 조건부 인수 건은 전문 심사역이 직접 검토하는 이원화 방식이 업계에 자리 잡고 있다.
보험금 지급 단계에서는 삼성화재가 의료심사 AI로 진단서와 수술기록지를 분석해 지급 여부를 1차 판단하고 있다. DB손보는 블랙박스 영상을 활용한 AI 과실판정 시스템을 운영한다.
동양생명은 사고보험금 위험탐지 시스템(CRDS)을 도입한 이후 보험사기 감지 효율이 63% 높아졌고 보험금 자동심사율도 22%에서 45%로 올라갔다. 유병자보험 시장이 커지면서 심사 물량이 늘고 심사 기준도 세분화된 점이 보험사들의 AI 도입을 앞당긴 배경으로 꼽힌다.
우리카드는 기존 부정사용 탐지 시스템(FDS)에 LLM을 접목해 의심 거래 심사까지 AI가 수행하는 '무인심사 시스템'을 연내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지난 6월 사업자 선정 절차에 착수했다. 기존에는 AI 음성봇이 고객에게 본인 사용 여부를 확인하고 모니터링 인력이 함께 대응해 왔다. 우리카드는 전면 자동화 대신 검증을 거쳐 단계적으로 적용할 방침이다. 롯데카드는 통신 3사의 AI 기반 보이스피싱 탐지 솔루션을 FDS와 연계해 지난해 7월부터 올해 5월까지 3억 2000만원 규모의 피해를 예방했다.
결제 영역에서는 신한카드와 하나카드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모두의 AI' 사업에 SK텔레콤 컨소시엄 금융 파트너로 참여해 AI가 상품 검색부터 결제까지 대신 처리하는 '에이전트 페이'를 개발하고 있다. 신한카드는 AI 오작동이나 해킹에 따른 비정상 결제를 FDS로 감지하고 오구매와 시스템 오류에 대한 보상·분쟁 처리 체계도 마련할 계획이다.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는 올해 초 연구보조원(RA) 업무 상당 부분을 AI로 전환하고 RA 인력을 애널리스트로 승격시켜 분석 대상 기업을 늘리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해외 제휴사 리서치 자료를 AI로 번역해 시차 없이 제공한다. 키움증권이 생성형 AI로 국내외 증시 동향을 분석해 제공하는 AI 시황 리포트는 지난 8월 중순 이용자 151만명을 넘었다.
KB증권은 투자분석뿐 아니라 법무 검토와 리스크 관리까지 AI 적용 범위를 넓혔다. 토스증권은 오픈API 서비스를 시작해 이용자가 생성형 AI에 자연어로 내린 투자 명령을 실제 거래와 연결할 수 있게 했다.
◆ '최종 책임은 임직원'…망분리·데이터 규제 정비 과제
금융위원회가 지난 6월 시행한 개정 '금융분야 인공지능 가이드라인'은 AI를 업무 보조수단으로 규정하고 최종 의사결정과 책임은 임직원이 지도록 했다. AI 활용 사실을 고객에게 알리고 오류 신고와 이의제기 절차를 마련하도록 하는 내용도 담겼다. 가이드라인은 AI를 활용하는 모든 금융회사가 지켜야 할 자율규제이며 인공지능기본법상 고영향 AI에 해당하면 별도의 법적 의무가 생긴다.
금융감독원은 가이드라인 시행에 맞춰 금융분야 AI 위험관리 프레임워크를 배포했다. 지난 6월 말에는 은행지주 8곳과 은행 20곳의 내부통제 담당자들에게 안전한 AI 도입을 위한 내부통제 구축을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현장 간담회에서 금융지주와 카드사 관계자들은 내부 업무 효율화는 상당 부분 진척됐지만 대고객 서비스로 확대하기에는 망분리·데이터 규제와 AI가 개입한 거래의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는 점을 애로사항으로 꼽았다. 금융위는 당시 일부 금융사의 보안용 망분리를 완화하고 AI 학습을 제약하는 개인신용정보 동의제도와 데이터 가명처리 관련 규제를 정비하겠다고 밝혔다. 하반기에 태스크포스(TF)를 꾸려 AI 에이전트 시범사업 운영방안 등을 구체화한다는 계획도 내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