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소상공인 특화 신용평가(SCB)를 활용한 은행 대출에서 부실이 발생하더라도 담당 임직원을 제재하지 않겠다는 면책 조항을 가이드라인에 담았다. 금융거래 이력이 부족한 소상공인에게 성장성을 근거로 자금을 공급하라는 정책 주문이 실제 창구에서 작동하려면 담당 직원의 책임 부담을 먼저 덜어줘야 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가 지난달 14일 제정해 31일 시행한 '은행업권 소상공인 성장금융 가이드라인' 제25조는 SCB 평가결과를 활용한 대출 업무에서 관련 법령과 내규 절차를 준수하고 합리적 근거에 따라 성실하게 업무를 처리한 경우 해당 대출에서 부실이나 손실이 발생했다는 사실만으로는 제재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임직원과 해당 업무 사이에 사적인 이해관계가 없고 절차상 중대한 하자가 없으면 고의나 중과실이 없는 것으로 추정한다는 조항도 함께 들어갔다. 다만 금품이나 이익 제공, 부정한 청탁이 있었던 경우와 대주주·동일차주 신용공여 한도 등 금융거래 대상과 한도를 제한하는 법규를 위반한 경우는 면책 대상에서 빠진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이날 오전 중소기업은행 광화문지점을 찾아 SCB 은행권 시범운영 상황을 점검했다. 금융위는 지난 4월 매출과 업종, 상권 등 비금융정보를 분석해 소상공인의 미래 성장성을 평가하는 SCB 도입방안을 내놓은 뒤 지난달 관련 규정과 개인사업자대출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을 정비했다. 시범운영에 참여하는 은행은 종전 7개 은행 1조 8000억원 규모에서 16개 은행 2조 2000억원 규모로 늘었다. 국민·기업·농협·부산·신한·우리·제주·하나은행 등 8개 은행이 지난달 31일 시범운영에 들어갔고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 토스뱅크를 비롯한 나머지 8개 은행도 하반기 중 순차적으로 참여한다.
은행권은 성장등급이 높은 소상공인에게 신용등급 상향과 대출한도 확대, 금리 인하 등의 혜택을 부여한다. 이날 현장에서는 우대 대상 소상공인과의 여신거래약정서 체결이 이뤄졌다. 금융위는 사전 대출심사 과정에서 커피 전문점과 온라인플랫폼 가맹점, 음식점, 도소매업 등 여러 업종에서 대출 승인과 한도 상향이 실제로 나왔다고 설명했다.
이 위원장은 "포용금융은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경쟁의 기회도 갖지 못하고 밀려나는 일이 없도록 공정하고 타당한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라며 "기존 금융거래 이력 중심의 신용평가체계에서는 반영되기 어려운 비금융 데이터를 바탕으로 성장성을 평가하는 SCB 도입은 포용금융 취지를 살리기 위해 꼭 필요한 정책"이라고 말했다.
가이드라인은 성장성 평가가 대출 문턱을 과도하게 낮추는 상황도 함께 차단했다. 제18조는 SCB 평가결과만을 단독으로 활용해 대출 승인 여부가 자동으로 결정되는 심사 체계를 운영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했다. 미래 성장성을 10등급 체계로 나타내는 기업성장등급(S등급)과 기존 기업신용등급(CB등급)을 결합해 SCB등급을 산출할 때도 제약이 붙었다. 중신용·고성장 차주의 CB등급을 상향하는 경우에도 기존 CB등급이 유지하던 부도율 서열화 수준을 그대로 지켜야 한다. 성장성을 반영해 등급을 올리더라도 상위 등급 차주의 부도율이 하위 등급보다 높아지는 역전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평가기관 간 경쟁이 등급 완화로 번지는 상황에도 미리 손을 댔다. 제23조는 평가기관이 은행에 관대한 평가결과를 암시하거나 약속하는 행위를 금지했고 은행이 유리한 평가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특정 평가기관을 골라 평가를 의뢰하는 행위도 함께 막았다. 평가기관이 자체 계량모형을 새로 도입하거나 변경할 때는 적용일 기준 최소 10영업일 전까지 모형 개발 목적과 주요 활용변수, 등급 분포, 등급별 고성장 비중 및 불량률 등을 은행과 한국신용정보원에 통보해야 한다.
지원 대상 업종도 별표로 구분했다. 도매·소매업과 숙박·음식점업, 운수·창고업, 교육서비스업, 제조업, 건설업, 정보통신업 등이 포함된 반면 담배도매업과 일반유흥주점업, 골프장 운영업, 카지노 운영업, 점술 및 유사서비스업, 가상자산 매매·중개업은 제외됐다. 부동산업과 금융·보험업, 보건업 역시 대상 업종에서 빠졌다. 여신취급업종이 대상에 해당하더라도 도박이나 사치, 향락 등 국민 정서상 지원에 부적절하다고 판단되는 사업을 영위 중이면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조항도 별도로 뒀다.
평가기관은 평가 의뢰일로부터 1영업일 이내에 은행에 SCB 평가결과를 제공해야 하며 법인 소상공인은 은행과의 협약에 따라 최대 3영업일까지 늘릴 수 있다. 평가 관련 제출자료와 평가 이력은 평가유효기간 만료일부터 최소 3년간 보관해야 하고 등급 산출이 완료된 평가결과와 평가 이력은 전산시스템에서 임의로 변경할 수 없도록 구축해야 한다.
금융위는 2027년 하반기까지 시범운영 결과를 축적한 뒤 전 은행권으로 SCB 적용을 확대할 계획이다. 오는 10월 출시하는 개인사업자 전용 사잇돌대출과 내년 지역신용보증재단 보증심사에도 SCB 평가를 반영한다. 이 위원장은 "소상공인이 성장성을 기반으로 평가받고 필요한 자금을 이용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보완해 나가겠다"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