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 궁금증 ⑯] 우리 집 누수로 아랫집 피해, 어느 보험으로 처리하나요

 

배관에서 물이 새 아랫집 천장과 벽지가 젖었다는 상담이 계절을 가리지 않고 들어온다. 수리비를 두고 이웃과 얼굴을 붉히다 뒤늦게 일상생활배상책임보험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 보험은 단독 상품으로 판매되지 않고 주택화재보험이나 상해보험, 어린이보험 등에 특약으로 부가돼 있어 가입 사실 자체를 모르는 가입자가 적지 않다. 생명보험협회와 손해보험협회가 함께 운영하는 내보험찾아줌에서 본인 계약을 조회하면 특약 가입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일상생활배상책임보험은 피보험자가 일상생활이나 주택의 소유·사용·관리로 인한 우연한 사고로 타인의 신체나 재물에 손해를 입혀 법률상 배상책임을 지게 됐을 때 그 손해를 보상한다. 아랫집 도배와 장판 교체 비용처럼 타인이 입은 손해가 보상 대상이며 우리 집에 생긴 손해는 원칙적으로 보상되지 않는다. 자택 수리비까지 지급하기 위해 만들어진 상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집 마감재 피해까지 보장받으려면 주택화재보험에 급배수시설 누출손해 특약을 부가해야 하는데 이 특약에서도 급배수설비 자체의 교체나 수리 비용은 보상하지 않는다.

 

예외로 인정되는 항목이 손해방지비용이다. 상법 제680조는 보험계약자와 피보험자가 손해의 방지와 경감을 위해 노력하도록 정하고 있으며 약관도 이를 위해 지출한 비용을 보상하는 손해로 규정한다. 금융감독원 분쟁조정 사례에서는 급히 상하수도관 밸브를 잠그는 데 든 인건비, 아래층으로 물이 계속 내려가 침수가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한 배수펌프 대여비, 누수 원인 부위의 배관 수리비가 손해방지비용으로 인정됐다. 원인을 찾다 잘못 짚은 오탐지 비용과 바닥 철거, 배관 교체, 방수 작업 공사비도 여기에 포함됐다.

 

반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비용도 분명하다. 손해방지 목적과 관련이 없는 벽면 공사와 보양 공사 비용, 누수 원인이 제거된 뒤 이뤄진 매립이나 포장 작업이 그렇다. 법원도 보험계약자나 피보험자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하는 보험목적물 수리는 그로 인해 간접적으로 손해가 줄어들더라도 보험회사가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손해방지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서울동부지법 2019년 2월 15일 선고 2018가합107631). 이미 발생해 진행 중인 손해의 확대를 막기 위한 비용인지, 재발을 막기 위한 예방 비용인지에 따라 결론이 갈린다.

 

누구의 보험으로 처리할지는 배상책임을 누가 지는지에 달렸다. 민법 제758조는 공작물의 설치나 보존의 하자로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 점유자가 먼저 배상하되 점유자가 손해 방지에 필요한 주의를 게을리하지 않았다면 소유자가 배상하도록 정하고 있다. 주택 누수는 대체로 바닥 하자나 배관 노후에서 비롯되므로 통상 소유자가 배상책임을 지게 된다. 전세로 사는 집의 보일러가 낡아 누수가 생겼고 세입자가 관리에 필요한 주의를 다했다면 세입자가 가입한 일상생활배상책임보험으로는 아랫집 피해를 보상하기 어렵다.

 

법원도 같은 기준을 적용해왔다. 바닥에 매설된 수도배관의 이상으로 아래층에 피해가 생긴 사건에서 재판부는 하자의 부위와 정도에 비춰 임차인이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고칠 수 있는 사소한 문제가 아니었고 임대인이 임대차계약상 수선의무에 따라 수리를 책임져야 할 파손에 해당하며 임차인이 누수를 알게 된 즉시 수리를 요청했다는 점을 들어 임차인의 배상책임을 부정했다(서울지법 2001년 6월 27일 선고 2000나81285). 반대로 세입자가 누수 사실을 알고도 집주인에게 알리지 않아 손해가 커졌다면 점유자로서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아파트라면 배관이 어디에 속하는지부터 가려야 한다. 공동주택 표준관리규약은 세대 내부 마감 부분과 전용으로 사용하는 벽체에 설치된 배관과 배선을 전유부분으로 두되 두 세대 이상이 함께 쓰는 배관과 배선은 공용부분으로 정하고 있다. 원인이 어느 쪽인지 분명하지 않은 경우에는 집합건물법 제6조에 따라 그 흠이 공용부분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공용부분 하자로 생긴 손해는 구분소유자 전원의 책임에 돌아가므로 결국 입주자대표회의나 관리단이 배상하게 되며, 이때는 윗집 개인이 가입한 특약이 아니라 관리주체가 든 배상책임보험에서 처리된다.

 

피보험자 범위도 확인해야 한다. 약관상 피보험자는 증권에 기재된 본인, 가족관계등록부나 주민등록표에 올라 있는 배우자, 본인이나 배우자와 생계를 같이하면서 증권에 적힌 주택에 주민등록상 동거 중인 민법 제777조의 친족, 본인이나 배우자와 생계를 같이하는 별거 중인 미혼 자녀다. 할머니가 소유한 집에 손녀가 함께 살다 누수가 난 사례에서는 소유자인 할머니가 손녀 보험의 피보험자에 해당하는지가 쟁점이 됐다. 대법원은 생계를 같이한다는 것이 주민등록지가 같은지와 관계없이 실제로 한 세대 안에서 거주하며 동일한 생활자금으로 생활하는지에 따라 판단할 문제라고 보고 있다(1989년 5월 23일 선고 88누3826). 손녀가 할머니와 생계를 같이하고 증권에 그 주택이 기재돼 있다면 보상이 가능하다.

 

증권에 적힌 주택이 기준이 되므로 이사한 뒤에는 보험회사에 주소 변경을 알려야 한다. 자녀가 독립해 세대를 분리했다면 가족 구성원으로 보장받지 못할 수 있어 별도 가입 여부를 살펴봐야 한다.

 

배상액을 어디까지 인정할지도 다툼이 잦다. 누수로 파손된 벽과 천장, 바닥, 가구의 수리·교체 비용은 사회 일반의 거래관념과 경험칙에 비춰 통상손해로 인정된다. 반면 누수 때문에 집에 살 수 없어 지출한 임시 거주비는 특별손해에 해당해 그런 사정을 가해자가 알았거나 알 수 있었던 경우에만 배상 범위에 들어간다. 누수로 직접 젖은 의류의 세탁비는 통상손해로 볼 수 있지만 호텔에 머무는 동안 쓴 식비와 세탁비는 누수와의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어려워 인정받기 쉽지 않다.

 

법원은 누수와 직접 관련된 부분의 보수비용만 인정하는 쪽에 서 있다. 서울중앙지법은 색을 맞추기 위해 집 전체 벽지를 교체해달라는 청구를 기각하고 훼손된 부분에 대한 책임만 인정했다(2017년 8월 18일 선고 2016나84193). 객관적인 증거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한 보수공사나 기존보다 고급 자재를 쓴 복구공사는 배상액이 깎일 수 있다는 판단도 자리를 잡았다(대법원 1996년 5월 14일 선고 95다24975). 보험회사가 견적서를 받고 감가상각을 적용해 필요타당한 범위를 산정하는 만큼 수리를 시작하기 전에 보험회사에 연락해 현장 확인을 받아두는 편이 유리하다.

 

실제 수령액을 따질 때는 자기부담금도 계산에 넣어야 한다. 상품과 가입 시기에 따라 다르지만 누수 사고는 50만원, 그 밖의 대물 사고는 20만원으로 정한 상품이 많고 2020년 이전에 가입한 계약은 이보다 적거나 없는 경우도 있다. 가족이 각자 일상생활배상책임 특약에 들어 있더라도 손해액을 넘겨 받지는 못한다. 실제 부담한 배상금을 한도로 각 보험회사가 나눠 지급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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