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치료비 보장 한도가 연간 1억원대로 올라선 가운데 보험금을 받을 수 있는 병원을 제한하는 설계가 빠르게 늘고 있다. 내건 한도가 큰 담보일수록 병원 등급 단서가 따라붙는다. 생명보험과 손해보험을 가리지 않고 8월 주력 상품 상당수가 이런 조건을 달았다.
4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이달 들어 생명보험사와 손해보험사들은 종합병원 이상에서 치료받아야 보험금을 주는 암 치료비 담보를 잇따라 내놓았다. 담보 이름에 아예 '종합병원'이나 '상급종합병원'을 넣어 파는 곳도 여럿이다.
DB생명은 종합병원 이상에서 받은 비급여 암수술과 항암약물치료, 항암방사선치료를 보장하는 특약을 이달 내놨다. 신한라이프는 이날 종합병원 암복합치료비 특약을 선보였다. KB손보가 이달 출시한 통합치료비는 암 담보에 상급종합병원과 암 중점치료기관, 순환계 담보에 상급종합병원과 권역심뇌혈관센터라는 조건을 각각 달았고, AIG손보도 오는 10일 상해담보를 개편하면서 상급종합병원 입원일당을 새로 넣는다.
◆ 병원 등급으로 나뉘는 담보
요즘 나오는 암 치료비 상품은 병원 등급에 따라 담보를 층층이 쌓아 올리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병원을 가리지 않는 담보를 맨 아래에 두고 그 위에 종합병원 한정 담보를, 다시 그 위에 상급종합병원 한정 담보를 얹는 식이다. KDB생명 라이프핏건강보험이 이 세 층을 한 상품 안에 모두 담았고 삼성생명도 종합병원 이상과 상급종합병원 플러스, 모든 병원의 세 갈래로 암 치료비 라인업을 나눠뒀다.
병원을 가르는 기준도 갈수록 세분화돼 라이나생명은 보장 대상을 상급종합병원과 국립암센터, 지역암센터, 원자력병원으로 한정하면서 여기에 해당하는 지역암센터로 전북대병원과 화순전남대병원, 경상국립대병원 등 13곳을 일일이 열거해뒀다. 손해보험에서는 암 중점치료기관과 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라는 이름까지 등장했는데 상급종합병원보다도 좁은 범위다.
◆ 조건 좁힐수록 보험료는 내려간다
병원을 좁힐 때 보험료가 얼마나 떨어지는지는 각 사가 내놓은 예시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KDB생명에서 40세 남자가 20년납 100세 만기로 가입할 때 병원 제한이 없는 암주요치료비특약은 2000만원 보장에 월 1만 2660원으로 1000만원당 6330원꼴이다. 같은 상품의 종합병원 비급여 암주요치료비특약은 1000만원 보장에 1210원, 상급종합병원Ⅱ 비급여 암주요치료비특약은 980원까지 내려간다. 병원 등급을 종합병원에서 상급종합병원으로 한 칸 더 올리는 것만으로 19%가 더 빠진다.
라이나생명에서도 40세 남자가 1000만원을 가입할 때 종합병원 한정 특약은 월 3만 8300원인데 대상을 상급종합병원과 암센터로 좁힌 특약은 3만원이다. DB생명이 이달 내놓은 종합병원 이상 특약은 2000만원 단독 가입에 1만 2580원인 반면, 기존 설계인 암주요치료 2000만원과 기타피부암·갑상선암 400만원을 묶으면 같은 조건에서 4만 3036원이 든다.
손해 쪽도 사정이 다르지 않아 KB손보의 비급여 암통합치료비 1억원은 60세 여성 기준 8584원이고 메리츠화재의 비급여 암통합치료비는 50세 여성 간편심사 기준 9204원이다. 한화손보의 종합병원 한정 비급여 복합치료생활비는 40세 남자 기준 4900원에 가입할 수 있다.
보험료가 낮아진 만큼 회사가 앞세울 수 있는 한도는 커진다. 삼성생명의 암통합치료 특약은 1억원과 8000만원, 5000만원 가운데 고를 수 있고 모두 종합병원 이상 조건이 붙는다. 반면 모든 병원을 인정하는 프리미엄 암직접치료 특약의 최대 가입금액은 2000만원에 그친다. 동양생명의 종합병원이상비급여암통합치료비도 1억원까지 설계되고, 하나생명은 상급종합병원 한정 특약을 포함해 합산하면 면역항암치료 때 최대 1억 1000만원을 받을 수 있다고 안내한다. 하나손보는 종합병원 한정 담보를 매년, 매회 한도 제한 없이 지급한다며 합산 1억 9000만원 이상이라고 소개한다.
◆ 병원 386곳, 명단도 연말에 바뀐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경영공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상급종합병원은 47곳, 종합병원은 339곳으로 둘을 합쳐도 386곳이다. 병원급 의료기관 1428곳과 요양병원 1296곳, 정신병원 261곳은 종합병원 이상을 요구하는 담보의 보장 대상에서 빠진다. 상급종합병원만 인정하는 담보라면 범위는 47곳으로 줄어든다.
보장 대상 병원 명단이 그대로 유지되는 것도 아니다.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제5기 상급종합병원 47곳의 지정 기간은 올해 12월 31일 끝난다. 3년마다 재지정을 거치는 만큼 내년부터 적용되는 제6기 명단에서 빠지는 병원이 나오면 가입 당시 염두에 뒀던 병원이 보장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 암 중점치료기관과 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 역시 별도의 지정 기준과 갱신 주기를 따른다.
가입 초기에 적용되는 감액 조건도 함께 따져봐야 한다. 동양생명은 종합병원 한정 복합치료비를 계약일로부터 1년 안에는 절반만 지급하고, 하나생명도 상급종합병원 담보가 들어간 플랜에 1년간 50% 감액 기간을 뒀다. 이런 담보는 대부분 암보험이 아니라 건강보험이나 종합보험에 딸린 특약으로 팔린다. 가입자가 여러 특약 가운데 하나로 고르는 구조여서 한도가 앞에 서고 병원 조건은 특약 이름과 약관에 담긴다.
보험사들은 고액 치료가 대형병원에 몰리는 만큼 실제 지출이 발생하는 곳에 보장을 모으는 설계라고 설명한다. 병원을 좁히는 대신 다른 조건을 넓힌 사례도 있다. DB생명은 신규 특약의 보장 기간을 진단 후 10년에서 만기까지로 늘리고 지급 횟수도 치료 통합 연 1회에서 치료 항목별 연 1회로 확대했다.
보험연구원의 한 연구원은 "정액형 담보에서 치료 장소를 제한하는 방식은 위험을 세분화하는 정상적인 언더라이팅 수단"이라며 "다만 소비자가 한도만 보고 가입하면 나중에 지급 요건에서 어긋날 소지가 있어 설명 단계에서 조건이 충분히 전달되는지가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