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시중은행 대출 총량 벌써 80% 소진…남은 여유분 9천억 불과

우리 지점당 10억·국민 3억 제한…은행들 자율규제 경쟁
삼성·한화생명도 주담대 중단…9월 킥스 규제까지 겹쳐

 

주요 은행들이 올해 쓸 수 있는 가계대출 총량의 8할을 반년 만에 소진했다. 남은 넉 달 반 동안 늘릴 수 있는 잔액이 1조원에도 못 미치자 은행들은 영업점별 판매 한도를 묶고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절반으로 자르는 자율규제 경쟁에 들어갔다. 보험사들도 신규 주담대 취급을 잇달아 멈추면서 하반기 실수요자들이 돈을 구할 통로는 상반기보다 눈에 띄게 좁아지게 됐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이달 초 가계대출 잔액은 정책성 대출을 뺀 기준으로 648조원 안팎이다. 작년 말과 견주면 3조 3900억원가량 늘었다. 금융당국과 협의한 올해 연간 증가 목표치가 4조 3400억원이니 남은 여유분은 9000억원대에 그친다. 지난달에만 은행권 가계대출이 7조 6000억원 불어난 속도를 감안하면 한 달치 증가분의 8분의 1 수준이다. 지난해 목표를 넘겨 페널티를 받은 국민은행의 올해 목표 증가율은 0.59%로 5대 은행 가운데 가장 낮다.

 

한국은행이 지난 9일 내놓은 '6월 금융시장 동향'을 보면 지난달 말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은 1189조 4000억원으로 집계됐다. 한 달 새 7조 6000억원 늘어난 것으로 2024년 8월(9조 2000억원) 이후 1년 10개월 만에 가장 큰 폭이다. 주담대가 4조 3000억원 늘어 945조원, 기타대출이 3조 3000억원 증가해 243조 5000억원을 기록했다. 수도권 주택 거래가 살아나고 개인들이 주식 투자에 자금을 태우면서 주담대와 신용대출이 같이 뛰었다. 전 금융권으로 넓히면 6월 한 달 8조 3000억원이 늘어 6개월 연속 증가세가 이어졌다.

 

여유분이 바닥을 드러내자 은행들은 앞다퉈 창구를 좁히고 있다. 우리은행은 이날부터 영업점별 주택 관련 대출(주담대·전세자금대출) 판매 한도를 월 10억원으로 묶었다. 기존 30억원의 3분의 1 수준으로, 지난해 11월 10억원으로 제한했다가 올해 들어 30억원으로 풀었던 조치를 반년 만에 되돌렸다. 앞서 국민은행은 지난 10일부터 주택 구입 목적 주담대 최대 한도를 지역과 집값에 관계없이 3억원으로 제한했다. 종전에는 수도권·규제지역에서 6억원까지 빌릴 수 있었다.

 

모기지보험 가입을 막는 방식도 번지고 있다. 주담대와 함께 드는 MCI·MCG가 없으면 소액 임차보증금을 뺀 금액만 빌릴 수 있어 실질 한도가 깎이는 효과가 난다. 우리은행이 이날부터 신규 가입을 중단했고 SC제일은행은 15일부터 주담대 MCI 신규 가입과 모바일 비대면 주담대를 함께 막았다. SC제일은행은 영업점장 우대금리도 0.1~0.3%포인트 줄였다. 신한은행은 지난 10일 모기지보험 가입을 중단했고 하나·NH농협은행은 모기지보험 제한과 모집인 채널 접수 축소를 병행하고 있다.

 

보험권의 대출 축소는 더 전면적이다. 삼성생명은 8월 말까지 비대면 채널 주담대 접수를 받지 않기로 했고 삼성화재는 이달 말까지 대면·비대면을 가리지 않고 신규 주담대 취급을 일시 중단했다. 한화생명은 지난달부터 모든 채널에서, NH농협생명은 지난 4월부터 신규 주담대를 취급하지 않고 있다. 동양생명도 이달부터 아파트담보대출 신규 취급을 멈췄다. 은행 규제가 조여질수록 보험사 쪽으로 수요가 옮겨오는 풍선효과를 미리 차단하려는 조치다.

 

오는 9월 말 시행되는 자본규제 강화도 보험사들이 몸을 사리는 이유다. 금융당국은 지급여력(K-ICS·킥스) 비율 산정에 쓰이는 주담대 위험계수를 올릴 예정으로 주택담보인정비율(LTV) 60~80% 구간은 3.5%에서 4.0%로 상향된다. 위험계수가 높아지면 주담대를 취급할수록 요구자본이 늘어 자본 부담이 커진다. 당장의 타격은 크지 않더라도 신규 취급 유인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신용대출과 보험계약대출까지 관리 대상에 올랐다. 교보생명은 이달부터 신용대출 한도를 600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낮췄고 동양생명은 원금의 20% 이상을 갚아야 만기를 연장해주도록 조건을 강화하면서 신규 신용대출도 중단했다. 삼성화재는 일부 신용대출 상품의 신규 취급을 멈췄다.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실이 보험사들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5월 말 기준 보험계약대출 잔액은 71조 8389억원으로 지난해 말(70조 7958억원)보다 1조 431억원 늘었다. 해약환급금을 담보로 신용심사 없이 빌릴 수 있는 급전 창구여서 당국이 예의주시하는 대목이다. 삼성생명은 대출 한도를 해약환급금의 95%에서 85%로 내렸고 삼성화재는 일부 저해지환급형 상품의 보험계약대출 취급을 중단했다.

 

다른 2금융권도 사정은 비슷하다. 9개 카드사의 5월 말 카드론 잔액이 43조 2534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하자 금융위원회는 이달 초 여신전문금융회사를 소집해 관리 강화를 주문했다. 집단대출이 늘어난 일부 상호금융회사도 점검 대상에 올랐다. 저축은행은 지난해 6·27 대책으로 신용대출 한도가 연소득 100% 이내로 묶인 데다 수신 금리 경쟁으로 조달 비용까지 오르면서 은행에서 밀려난 수요를 받아낼 여력이 크지 않다. 6월 중 저축은행 가계대출은 3000억원, 여전사는 2000억원 각각 줄어 감소로 돌아섰고 상호금융은 1000억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보험권만 1조원 증가했다.

 

금융당국은 하반기에도 고삐를 늦추지 않겠다는 태도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지난 15일 청와대 업무보고에서 "가계대출 총량을 안정적으로 관리해 부동산과 금융과의 절연 기조를 유지하겠다"라며 연간 증가율 1.5% 목표를 그대로 가져가겠다고 밝혔다. 신진창 금융위 사무처장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80% 후반대로 60% 중반대인 주요 선진국보다 높다"라며 "다른 은행은 국민은행처럼 대출 한도를 확 줄이는 조치는 고려하지 않는 것으로 들었다"라고 말했다.

 

세부 기준은 손질된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계산할 때 일회성 성과급으로 소득이 통상 연도보다 20% 넘게 늘어난 경우 지금은 2년 치 평균 소득을 적용하는데 앞으로는 산정 기간이 3년으로 늘어난다. 수억원대 성과급을 받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 직원 등의 대출 한도가 줄어들게 된다. 비거주 1주택자 전세대출 규제는 투기성 논란이 없는 최소한의 사례에만 적용하기로 했다. 직장·학교·병원 등 사정이 제각각인데 일률적 잣대를 들이대면 실수요자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대출 현장에서는 하반기 주담대 시장이 상당한 혼란을 겪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아파트 매매거래가 3월 5만 6604호, 4월 5만 3177호, 5월 5만 1585호로 이어졌는데 매매계약 체결부터 잔금 대출까지 통상 두세 달이 걸려 최소 8월까지는 대출 수요가 몰릴 수밖에 없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별 규제 강도에 따라 대출 수요가 다른 금융사로 이동할 수 있다"라며 "당분간 고강도 총량 관리 조치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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