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1일부터 삼성·현대·메리츠·KB·DB 등 주요 손해보험회사와 신한라이프·KB라이프생명이 암·뇌·심혈관 보험에도 '무기명 대리청구인' 제도를 적용한다. 가입자가 청구를 맡길 사람을 미리 특정해 두지 않아도 배우자나 자녀 등 가족이 대신 보험금을 받을 수 있는 제도로, 그동안 치매보험에만 열려 있던 대리청구가 중증 질환 보험으로 넓어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금융감독원은 29일 이런 내용을 담은 보험상품 대리청구인 지정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대리청구인 제도는 치매보험 가입자가 치매로 보험 가입 사실 자체를 잊어 보험금을 청구하지 못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 가입자가 대리청구인을 미리 정해 두면 본인을 대신해 청구할 수 있도록 한 장치다. 다만 제도를 이용하려면 대리청구인을 특정해 지정한 뒤 그 사람의 개인정보 수집·이용 동의까지 받아야 해 절차가 번거롭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이용이 까다롭다 보니 가입 수요와 실제 지정은 반대로 움직였다. 국내 치매환자는 2021년 79만명에서 지난해 97만명으로 늘었지만 같은 기간 대리청구인 지정률은 오히려 낮아졌다. 2021년 26.0%이던 지정률은 2024년 29%까지 올랐다가 지난해 25%, 올해 상반기 23.1%로 떨어졌다. 치매보험 보유계약이 올 1분기 575만건으로 역대 최대 수준까지 불어나는 동안에도 막상 보험금을 대신 받아 줄 사람을 정해 둔 가입자 비율은 거꾸로 줄어들었다.
새로 도입되는 무기명 대리청구인은 청구를 맡길 사람을 미리 특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기존 방식과 다르다. 개인정보 동의 절차가 빠지는 만큼 가입자가 손쉽게 제도를 이용할 수 있다. 기존 기명 방식에서는 배우자나 3촌 이내 친족 가운데 특정인을 골라 지정하고 그 사람의 동의까지 따로 받아야 했다.
대신 금감원은 금융사고를 막기 위한 안전장치를 함께 뒀다. 무기명 대리청구인의 자격을 배우자나 직계존비속으로 제한했고, 보험금도 대리청구인 계좌가 아니라 수익자인 계약자 본인 계좌로만 지급하기로 했다. 대리청구인 계좌로 곧장 입금되는 기명 방식과 구분되는 부분이다. 가입자가 거동이 어려워 본인이 직접 돈을 찾기 힘들 때는 은행권의 '거동불가 예금주 제도'를 활용해 계약자 계좌에서 병원으로 치료비를 바로 이체할 수 있도록 했다.
기명 대리청구인을 지정할 때 내야 하는 서류도 줄였다. 그동안 일부 보험사는 신청서와 신분증, 가족관계서류 외에 개인정보 수집과 보험가입내역 조회까지 폭넓게 동의를 요구해 왔다. 앞으로는 이름과 연락처, 주민등록번호 등 식별번호, 계약자와의 관계 정도의 최소 정보만 받도록 개인정보 동의서 양식을 통일한다.
적용 대상이 암·뇌·심혈관 보험으로 넓어진 것은 뇌졸중처럼 갑작스러운 중증 질환으로 의사소통이 어려워졌을 때도 대리청구인이 지정돼 있지 않으면 보험금 청구가 막힐 수 있다는 점을 반영한 결과다. 금감원은 운영 경과를 봐 가며 적용 보험을 더 늘리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암·뇌·심혈관 보험에 언제부터 무기명 대리청구를 받을 수 있는지는 보험사마다 차이가 난다. 손해보험사는 메리츠·한화·롯데·흥국·삼성·현대·KB·DB·농협·하나·AIG·AXA손보 등 대부분이 치매보험과 암·뇌·심혈관 보험을 7월 1일부터 한꺼번에 적용한다. 반면 생보사는 신한라이프와 KB라이프생명만 7월 1일에 두 보험을 동시에 열고 나머지는 종류별로 시점이 갈린다. 삼성생명은 치매보험을 7월 1일, 암·뇌·심혈관 보험을 9월 30일부터 적용하며 교보생명은 암·뇌·심혈관 보험 적용 시점을 12월로 잡았다. 한화·DB·NH농협생명은 내년 1월로 예정돼 있고, 미래에셋생명은 치매보험과 암·뇌·심혈관 보험을 모두 내년 4월에 시작해 가장 늦다.
개선된 제도는 다음달 1일 신규 계약부터 적용된다. 기존 치매보험 가입자도 무기명 대리청구인 등으로 새로 지정할 수 있도록 보험사가 알림톡 등을 통해 안내할 예정이다. 금감원은 대리청구인 지정제도 운영 현황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 금융소비자의 보험금 청구권이 보장되도록 노력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