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A 2조 vs 美 주식 300조…서학개미의 실제 움직임은

 

이른바 ‘서학개미’들의 국내시장 복귀계좌(RIA) 잔액이 2조원에 육박한 가운데 미국 주식 보관액 역시 사상 처음 300조원을 넘어섰다. 절세 마감을 앞둔 국내 유입과 빅테크 랠리에 따른 미국 잔류가 동시에 나타나면서, 서학개미 자금이 어느 쪽으로 향하고 있는지를 두고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20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15일 기준 RIA 계좌 수는 23만 5573개, 잔액은 1조 9647억원으로 집계됐다. 일주일 전인 8일과 비교하면 계좌는 2만 3721개, 잔액은 3590억원이 늘었다. 5월 31일 양도소득세 100% 면제 마감이 다가오면서 막바지 절세 수요가 몰린 결과로 풀이된다.

 

RIA는 외환시장 안정과 국내 증시 부양을 목적으로 도입된 2026년 한시 특례 제도다. 지난해 12월 23일 기준 보유한 해외주식을 전용 계좌로 옮겨 매도하면 1인당 5000만원 한도 내에서 양도세를 면제받을 수 있다. 매도 대금은 원화로 자동 환전돼 국내 주식이나 국내 주식형 펀드에 재투자되거나 예탁금 형태로 묶이는 구조다. 공제율은 매도 시점에 따라 차등 적용돼 5월 안에 결제가 끝나면 100%, 6~7월은 80%, 8~12월은 50%로 단계적으로 축소된다.

 

◆ 같은 시점, 정반대를 가리키는 통계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 14일 기준 국내 투자자의 미국 주식 보관액은 2000억 1375만 달러, 원화로 약 300조 2703억원을 기록하며 사상 처음 300조원 선을 넘어섰다. 정책 효과로 3월 말 1465억 7000만 달러까지 줄었던 보관액이 4월부터 다시 증가세로 돌아서 5월 11일 2001억 4000만 달러로 처음 2000억 달러 선을 돌파했다. 인공지능(AI) 반도체와 빅테크 랠리가 재개되자 서학개미들이 다시 미국 시장으로 발길을 돌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인텔과 메모리 ETF 등 AI 반도체 관련 종목으로 매수세가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 핵심"이라며 "기술주 랠리가 꺾이지 않는 한 미국 주식 보관액 증가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300조원 돌파를 곧이곧대로 '미국 회귀'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국내 투자자들은 4월 한 달 동안 4억 6893만 달러어치 미국 주식을 순매도해 지난해 6월 이후 10개월 만에 순매도로 전환했다. 5월 들어서도 14일까지 2억 1619만달러 순매도가 이어졌으나 매도 폭은 절반가량으로 줄어든 상태다. 보관액이 늘어난 것은 신규 매수보다 환율과 주가 상승에 따른 평가액 증가 효과가 더 컸다. 원·달러 환율은 5월 4일 1462.8원에서 15일 1500.8원으로 올랐고, 같은 기간 나스닥은 5.35%, S&P500은 2.77% 상승했다.

 

종목별 자금 흐름은 빅테크 쏠림을 더 분명하게 보여준다. 최근 한 달간 국내 투자자의 미국 주식 순매수액 1위 종목은 인텔(6억 4112만 달러)로, 애플 차세대 기기용 반도체 생산 계약 소식에 주가가 급등하면서 매수세가 집중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담은 '라운드힐 메모리' ETF와 나스닥 100지수를 추종하는 '인베스코 나스닥 100' ETF가 그 뒤를 이었고, 마이크론과 알파벳도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문제는 미국에서 차익을 실현한 자금의 행방이다. RIA로 유입된 2조원 안팎의 규모만으로는 그 흐름을 설명하기에 부족하다. 

 

0.65% vs 12%, 18배의 격차

규모를 견줘보면 격차는 더 분명해진다. RIA 잔액 1조 9647억원은 미국 주식 보관액 300조원의 약 0.65% 수준에 그친다. 정부가 RIA 설계 단계에서 참고한 2016년 인도네시아 사례에서는 해외 자산의 약 12%가 국내로 복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수치 사이에는 18배의 간극이 존재한다.

 

RIA 잔액을 곧장 '국내 증시 유입'으로 등치하기 어려운 이유도 있다. 제도상 RIA 계좌에 입금된 매도 대금은 반드시 국내 주식을 매수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원화 예탁금 상태로 1년만 유지해도 세제 혜택이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이다. 금융투자협회가 발표하는 RIA 잔액 통계 역시 해외주식 입고분과 국내 투자자산, 예탁금이 모두 포함된 합산 수치여서, 실제로 코스피·코스닥에 흘러간 자금 규모는 별도로 확인되지 않는다.

 

증권가에서는 RIA가 사실상 절세 통로로 활용되고 있다고 본다. 미실현 수익이 큰 해외주식 보유자가 22%의 양도소득세를 합법적으로 피해 가는 출구 역할에 가깝다는 것이다. 정부가 도입 취지로 내세웠던 '환율 안정과 국내 증시 부양'이라는 두 정책 목표와는 거리가 있는 결과다.

 

공제율 축소되는 6월, 정책 효과 본격 시험

결론을 단정하기에는 이르다. 5월 말까지 절세 막차 수요가 남아 있고, 정부도 이달 말까지 RIA 잔액이 추가로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RIA의 실제 자금 환류 효과는 6월 이후 윤곽이 잡힐 전망이다. 공제율이 80%로 줄어든 뒤에도 RIA로 신규 자금이 꾸준히 유입되는지, 미국 주식 보관액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는지가 핵심 관전 포인트로 꼽힌다. 정부가 한시 특례로 도입한 RIA가 단순 절세 통로에 그칠지, 자금 환류 정책으로 안착할지는 6월 이후 두 지표의 움직임에서 답이 나올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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