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칼럼] 잔나비가 쓴 동화책 ‘환상의 나라: 지오르보 대장과 구닥다리 영웅들’

 

[라온신문 김혜련 기자] 음악이나 글보다는 동영상이 더 많이 쓰이는 시대다. 직관적이고, 자세하고, 상상하지 않아도 쉽게 이해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음악과 글은 상상하는 이들에게는 최고의 매개체가 된다.

 

만약 내가 동화 속 주인공이라면, 동화 속 어딘가에서 모험을 떠난다면, 누굴 만나고 어떤 일이 펼쳐질까. 잔나비의 3번째 정규 앨범 ‘환상의 나라: 지오르보 대장과 구닥다리 영웅들’은 그런 상상에서 나왔을 것으로 보인다.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 동화 한 편을 읽은 것 같은 착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전의 정규 앨범들과 마찬가지로 잔나비의 앨범은 인트로가 확실하다. 이전 앨범 ‘전설’에서는 앨범 전체를 이끄는 화자인 존이 힘든 하루를 보내고 잠이 들기 전 자장가와 같은 분위기가 인트로였다.

 

 

이번 앨범의 첫 곡인 ‘환상의 나라’는 ‘옛날, 옛날에’로 시작 될 것만 같은 동화책의 문구처럼 동화 속으로 초대하는 듯한 분위기로 고요한 분위기에서 웅장한 사운드를 지나 작은 새들의 지저귐으로 마무리되는 아주 짧은 곡이다. 실제 잔나비가 밝힌 곡의 소개에는 ‘구닥다리 영웅들의 환상의 나라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라는 문구가 등장한다.

 

‘환상의 나라’의 마지막 부분의 새소리는 다음곡 ‘용맹한 발걸음이여’로 바로 이어진다. 마치 이야기가 이어지듯이 말이다. 이런 디테일한 부분까지도 신경 쓴 잔나비의 세심함이 느껴진다. ‘용맹한 발걸음이여’는 밝고 경쾌한 곡이다. ‘낡고 헤진 성실에 대한 찬가’라는 앨범 소개글처럼 용맹한 발걸음으로 길을 나서는 느낌이다. 앞부분 실제 동화 속 주인공이 등장해 말을 거는 듯한 내레이션 부분도 재미있는 요소다.

 

‘비틀 파워’는 비틀스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영감을 받아 선보이는 곡이다. 무명 시절을 겪었던 비틀스처럼 방향성을 상실했던 어느 날의 모습을 그렸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놀 때 사용했던 마법의 단어 ‘똥칼러 파워’ 같은 느낌이랄까. 마법의 단어처럼 ‘비틀 파워’를 외치는 최정훈의 보컬은 장난기가 넘치는 목소리다. 유쾌한 코러스와 덩달아 다음 행선지가 궁금해 지는 곡이다.

 

 

다음곡 ‘고백극장’에서는 정열의 신, 생존의 왕이라고 칭하는 화자가 우정과 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결국 ‘외로운 사람끼리 함께 외로울 것’을 제안한다. 왈츠같이 우아한 분위기를 이어나가던 곡은 신디사이저와 퍼커션 연주로 마무리된다. 어느 한 곡도 시시한 곡이 없다. 이어서 등장하는 ‘로맨스의 왕’은 불타는 사랑의 감정을 담았다. 영화 속에서 사랑에 빠진 남녀가 춤을 추는 장면에 딱 어울리는 곡이다. 노래가 3분 가까이 지날 쯤 극적으로 빨라지는 템포로 새로운 분위기를 전개하며 이번 장은 마무리된다.

 

꿈보다 현실에 투항해버린 친구들에 대한 노래 ‘페어웰 투 암스! + 요람 송가'는 용감한 행진을 이어가던 이들이 현실이라는 큰 벽에 부딪히며 감정에 변화를 겪는다. 이 부분에는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처럼 급작스러운 무거운 분위기가 연출되더니 또 다시 경쾌한 송가로 마무리된다. 이번 앨범 중 가장 예측할 수 없는 곡이다.

 

 

‘소년 클레이 피전’은 앨범 전체의 중간 곡으로 완전 다른 분위기로 시작한다. 앞서 들었던 곡들은 그나마 밝은 분위기였다면 ‘소년 클레이 피전’은 별이 될 줄 알았던 분칠 한 광대의 이야기로 마지막까지 이어지는 웅장한 사운드가 돋보인다. 앞서 ‘소년 클레이 피전’에서 바뀐 분위기는 이어진다. ‘누구를 위한 노래였던가’에서는 아팠던 지난날을 회상한다. 무책임하고 위선적인 시간 앞에 아픔을 느끼는 화제의 처연함을 담은 곡이다.

 

신비로운 분위기로 시작하는 ‘밤의 공원’은 그 동안 잔나비이 보여줬던 매력을 보여줬다. 10년 가까이 발길을 향했던 작업실 앞 공원을 노래한 것처럼 편안한 사운드와 서정적인 가사는 잔나비의 특기를 마음껏 보여줬다고 할 수 있겠다.

 

 

타이틀 곡 ‘외딴섬 로맨스’는 정지용 시인의 '오월 소식' 중 일부를 제목과 가사에 인용했다고 한다. 힘들고 지칠 것을 알고 있지만 용기를 내 사랑하는 이와 함께 끝까지 가보기로 결심하는 서정적인 가사와 함께 청량함이 돋보이는 발라드다. 촌스럽고 헤졌지만 타오르는 열정, 사랑, 꿈, 청춘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잔나비의 마인드를 관통하는 곡이다.

 

이어지는 ‘블루버드, 스프레드 유어 윙스!’는 오랜시간 길을 떠나온 친구와 자신에게 조금만 더 힘내보자는 응원의 메시지를 담았다. 앨범 소개글처럼 다 같이 일어나서 부르고 싶을 정도로 강렬한 보컬의 힘이 느껴진다. 

 

이제 동화는 마지막에 다다른다. ‘굿바이 환상의 나라’는 내레이션으로 진행되는 곡이다. 잔잔한 기타 사운드가 깔리고 ‘환상의 나라를 사랑하고자 했던 사내에게 현실의 아름다움은 독이어야만 했지’라고 고백하며 ‘이제 내가 믿어왔던 그 모든 것들 난 환상이었다 부를 수 있어’라고 생각을 정리한 뒤 화자는 집으로 가겠다고 전한다.

 

 

마지막 곡 ‘컴백홈’을 통해 우리는 지난날과 작별하며 현실로 돌아왔다. 가스펠적인 요소가 가득하면서 흥겹게 집으로 돌아가는 희망찬 분위기의 곡은 아이러니하게도 잔나비가 2015년에 만들어 아껴뒀던 곡이라고 한다. 2015년 잔나비의 목소리를 그대로 감상할 수 있다는 재미가 있다. 

 

잔나비는 인디씬에서 아날로그 감성을 대표하며 대중적인 사랑을 받아왔다. 자신들이 잘하는 분야를 안정적으로 하는 것보다 도전을 택한 잔나비는 이번에도 성공했다. 앨범 전곡을 최정훈이 작사·작곡, 김도형이 작곡하며 한층 더 뚜렷해진 잔나비만의 음악을 좀 더 확고하게 만들었다.

 

음악뿐만 아니라 한 편의 동화를 완성해 나가야 했을 이번 정규 앨범을 이렇게 멋지게 완성해준 잔나비에게 고맙다. 총 40분에 달하는 앨범은 음악이 아닌 잔나비가 들려주는 40분짜리 뮤지컬을 본 것 같은 느낌이다. 혹시라도 아직 이번 앨범을 듣지 못한 이들이 있다면 눈을 감고 앨범 전체를 차례대로 한 번에 들어보길 추천한다. ‘재미있는 앨범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는 잔나비의 소망이 이뤄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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